2019 전시 결산 - 콘노 유키

👩🏻‍💻2019 전시 결산📊 - ✍️콘노 유키

 

1. 개인전(혹은 작품) 중 가장 좋았던 것

우한나 <물라쥬 멜랑콜리크>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
구나 <너와나와너와나> (갤러리기체)
양유연 <날이 밝을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예술공간)
정지현 <다목적 헨리> (아뜰리에 에르메스)

네 전시의 공통점을 굳이 말하자면 공간과 설치 방식 및 전시 방식을 잘 활용한 점이다. 그렇다고 작품이 공간에 압도되어 버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한 공간 안에 흐름의 셈여림을 부여했고 그러한 차이가 개인전의 주제와 부합했다고 볼 수 있다. 우한나 작가는 북서울 미술관에서 열린 단체전 <두 번의 똑같은 밤은 없다>에서 선보인 작품도 (스케일 측면에서도) 굉장했지만,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의 개인전 <물라쥬 멜랑콜리크>는 좀 더 다른 톤으로 공간 안에서 전시를 선보였다. 어떤 경우에 이동하면서, 어떤 경우에 머물면서, 또 거울과 깨진 접시를 앞에 두고 스스로를 마주 보는 공간에서, 작가의 작품은 기능과 비기능(작가의 말을 빌리면 ‘무용’)의 역할을 전환한다. 동선 따라 다르게 펼쳐지는 전시 공간과 그 분위기는 주제에 반영된 ‘멜랑콜릭한’ 정서를 각기 다르게 전달한다. 

구나 작가의 <너와나와너와나>는 오브제와 평면 작업의 조화는 물론, 전시 제목과 작품 제목에서 연속적으로 나열되는 단어의 조합이 묘한 긴장감 또한 만든다. 빛 바랜 사진처럼 보이는 페인팅의 톤은 뼈처럼 나타난 오브제와 편지 위에 모아놓은 조개껍질과 게 또한 마찬가지로 한때 있던 추억이나 연관된 대상을 떠올리게 한다. 양유연 작가의 <날이 밝을 것을 알고 있다>는 전시 공간마다 다른 성격의 작품을 배치하는데, 한쪽에서는 화면에 포착되지 않는 입을 통해서, 다른 한쪽에서 어둠 속에 서게 되는 감상자의 입장에서 “날이 밝을 것을 알고 있다”를 발화와 다른 ‘믿음’이나 ‘소망’으로 연결시켜 표현한다(이에 대해서는 한정적으로 공개한 글에 더 자세히 다룬 바 있다). 우한나 작가의 개인전과 앞의 두 개인전는 작품과 공간을 활용한 측면뿐만 아니라 어쩌면 오늘날에 쉽게 묘사되는 감정이나 키워드를 더 심도 있게 작품과 전시를 통해 포착한 점에서 탁월했다. 

전시를 통한 셈여림은 정지현 작가의 <다목적 헨리>에서 다목적성을 통해 전개된다. 여기서 말하는 다목적(성)이란 그 대상을 도구로 쓴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감상을 비롯한 심미적인 경험의 대상 또한 가리킨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복합적인 묶음으로 등장하는 그의 작품은 가짜가 들어간 디스플레이가 디스플레이로서 실제로 작동하고, 기능의 제거가 심미적으로 소비되면서 효과가 추가적으로 생산되는 오늘날의 ‘소비재’ 양상을 보여준다. 따라서 단순히 열화된 복사본이 원본보다 덜 미친다고 강조하는 것과 달리, 전시장에서 그는 열화와 함께 증식되는 (감상 혹은 장식까지 포함한 더 넓은 의미의) 기능성을 결합의 형태로 보여준다.  

 

(왼) 우한나 <물라쥬 멜랑콜리크>, (오) 구나 <너와나와너와나>

(왼) 양유연 작가 <날이 밝을 것을 알고 있다> (오) 정지현 <다목적 헨리>

2. 기획이 인상깊었던 전시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귀국전> (박성태 예술감독, 최춘웅, 박정현, 정다영 큐레이터, 아르코미술관)
박세진, 부원희 <내 눈이 가늘어진다> (허호정 협력, 합정지구)
<이재헌x장파: 화가의 말> (플레이스막 연희)
김수진, 김수현 <공동지분 케이크> (중간지점)
<땅 밑의 별들>, <숭례문> (김지평 기획, 산수문화)

기획전의 경우는 사실 보는 시간과 거대한 주제를 감당할 수 없어서 아예 안 본 것도 있고, 봤는데 재미없게 본 전시도 있다. 작품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다가 출품작 수가 많고 사람이 많으면 도저히 집중을 못하면서 스트레스를 종종 받아서 기획전을 일부러 피하기도 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전시는 그래도 나름 어떤 매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주로 미술관에서 열리는 큰 기획전의 경우는 확실히 못 본 전시가 많아서 뭐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한편, <불온한 데이터>나 <광장> 전(전자 후자 모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디어 아마존: 인류세 2019>(일민미술관)에서 주제가 방대하기에만 그치는 전시를 보고 피로감이 꽤나 컸다. 오히려 확실히 범위를 좁혀 깊이 파고들어간 전시가 재미있었다.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은 자료 아카이빙의 측면뿐만 아니라 보여주는 방식과 잘 어우렸고(예를 들어 왜상으로 비치는 거울이나 모형으로 만든 도시의 모습), 한편으로는 작가의 작품을 표면적으로 전시를 다루는 수단적 역할로 보지 않고 각각의 작품의 특색을 살려 보여준 점에서 다층적이고 밀도 있는 전시였다.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보다 작은 규모의 경우, 작년에는 유독 이인전이 많았는데―예를 들어 임정수와 김민수의 <해의 바탕>(킵인터치), 김문기와 홍기하의 <박하사탕> 등등―여기서 소개하는 전시는 모두 작가 두 명의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 형태에 한층 더 밀도를 부여한 전시로 실현되었다. 큐레이팅 혹은 기획력(주제 선정과 보여주는 방식)이 흥미로웠던 전시로 합정지구에서 허호정 기획으로 열린 <내 눈이 가늘어진다>와 플레이스막 연희에서 열린 <이재헌x장파: 화가의 말>이 있다. 작품과 함께 어떻게 두 작가의 입장이나 하는 말이 다른지 보여준 점에서 두 전시는 이인전과 기획성이 잘 결합된 형식이었다. 중간지점에서 열린 <공동지분 케이크>는 미술작업을 하는 쌍둥이 자매인 김수진과 김수현의 차이와 공통점을 주제로 다룬 점에서 흥미로웠는데, 손전등으로 전시공간에 있는 작품을 보는 행위가 어떻게 주제와 연결되는지 아직 완벽하게 풀리지 못해서 궁금증 또한 남는 전시였다.

 

(상단 왼) <내 눈이 가늘어진다> (상단 오) <공동지분 케이크> (아래) <이재헌x장파: 화가의 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산수문화에서 열린 (의외로 주목을 덜 받은) <땅 밑의 별들>과 <숭례문>(김지평 기획)의 두 기획전은 역사를 작품과 접목시키면서 보여준 점에서 흥미로웠다. 사실 미술관이나 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 전시에서 역사를 주제로 다룰 때, 리서치의 기록으로만 나오거나 교류하는 행위가 앞선 나머지 작품에 밀도를 주기가 어려운 상태가 발생한다(이는 작년 일본에서 열린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 소개된 일본 작가의 영상 신작  일부를 보고 필자가 개인적으로 느낀 ‘아주 안 타까운’ 점이기도 하다). 종종 작품에서 역사가 표면적으로 읽힐 때도 있는데, 두 전시에서 참여 작가들은 본인들의 방식을 통해서 이해하고 풀어낸 점에서 흥미로웠다. 특히 <땅 밑의 별들>에 포함된 최영인 작가의 영상 작품 ‘낙서하는 수문장’은 흥미롭게 봤다. 영상에서 어떻게 유물이 다뤄지고 궁극적으로 무엇을 기록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서사 구조 내의 오브제(작가가 만든)를 실제 공간으로 가지고 온 점에서 유물과 허구의 관계성을 사실이다 아니다의 관계성과 다른 각도에서 짚어준다. 여기서 이야기/사건을 전달하는 매체 역할로서 오브제와 영상 작품은 지표적인 위치에서 허구와 진실 모두 기록한다. 말하자면 서사는 작가가 만든 것이지만 영상 작품은 그 허구를 실제로 기록하고 말해주며, 오브제 작품은 실제 공간에서 영상 속 허구를 대변하고 간직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어떤 글로 나올 예정이다.)

 

<땅 밑의 별들>에서 소개된 최영인 작가의 영상 작품 ‘낙서하는 수문장’

 

3. 올해의 발견 

김아름
김박현정
이동훈
임유정

작년보다 전시를 더 보게 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작은 개인전을 더 중요하게 챙겨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큰 전시에서 소개된 작품을 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작가가 어느 때보다 본인에 충실해지는 기회가 개인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전시(개인전이나 단체전이나)에서 100퍼센트 완벽하게 본인이 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주기도, 설상 그렇게 했는데도 수용자가 꼭 100퍼센트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또한 덜 알려진 작가나 매번 소환되는 ‘젊은 작가’ 혹은 ‘신인 작가’ 범주에서 눈에 띄는 작품을 ‘씬의 쇄신’처럼 간주하는 태도도 최근에 다소 회의감이 든다. 이번에 소개하는 네 명의 작가는 필자가 개인적으로 보고 아직 말을 못한 부분까지 포함해서 어떤 흥미를 가진 작품들을 선보였다. 

김아름 작가는 한예종 조형예술과 전문사 졸업전시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미지’를 주제로 다룬 작품 '이미지의 영토에서'가 소개되었는데, 영상을 보면서 비슷한 결의 작품이 당장 떠오르지 않아 새롭게 다가왔다. 소쇼에서 열린 개인전 <사랑 마음 주술>에서 소개된 작품 '비밀의 배' 역시 음악과 영상의 절제된 분위기가 참으로 독특했다. 

김박현정 작가는 스페이스55에서 열린 개인전 <0.29mm>의 서문을 읽고 흥미를 가져 보러 갔다. 이후 두 차례 전시 <OPERATOR> (Platform mortar, 개인전)와 <아이엠그라운드>(온수공간, 단체전)에서 다른 작품을 봤는데, 제작 과정을 통해서 사진의 물질성을 고민한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0.29mm>와 <아이엠그라운드> 전시에서 콘크리트와 페인팅에 비유된 사진이 궁극적으로 비유의 차원에서 예술 작품, 특히 사진 작품에서 어떻게 분석이 가능할지 고민해보고 싶다.

이동훈 작가는 누크갤러리에서 열린 <XOXO>에서 작품을 처음으로 봤다. 조각이 눈에 띄었지만, 같은 공간에 소개된 그림과의 연관성을 더 생각해보고 싶었고, 이후 드로잉 룸에서 열린 <꽃이 있는 실내>에서 더 많은 작품을 보면서 그가 다루는 자연적 모티프(동식물 등)과 재료, 그리고 페인팅과 조각의 매체적 연관성을 좀 더 고민하고 분석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임유정 작가의 작품은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개인전 <petting frame>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사실 필자도 덕질의 성향(미술 외 포함)이 있어 관심이 끌린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작품 ‘TO ALL THE BEINGS I'VE LOVED BEFORE’에서 애호한 대상이 변화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때, 영상에서 계속적으로 빨리 장면과 함께 말하는 화자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같은 공간에 소개된 ‘What is your favorite thing?’과 비교했을 때 빠르게 전개되는 영상 작품은 대상에 대한 덕질의 시작과 끝 역시 충격에 의해 시작한다고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어떤 글로 나올 예정이다.)

 

(왼) 김아름 <사랑 마음 주술>에 소개된 '비밀의 배' (우) 김박현정 <OPERATOR> 전시에서

(왼) 이동훈 <꽃이 있는 실내>에서 (우) 임유정 <petting frame>에서 ‘TO ALL THE BEINGS I'VE LOVED BEFORE’

‘올해의 발견’이 한해를 보내면서 어떤 번쩍임을 순간적으로 캐치하는 것이라면, 그동안의 작품과 제작 방식을 짚어 굵직하게 전시를 구성하는 시도도 눈에 띄었다. 노은주 <Walking-Aside> (윌링앤딜링), 김희천 <탱크> (아트선재센터), 박아람 <Roll and leaP : 2008~2019>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 김세진 <Walk in the Sun> (송은아트스페이스), 박경률 <ON EVENNESS> (백아트 서울) 등등 나중에 다룰 기회가 꼭 있으면 좋겠고, 그래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4. 올해 인상깊었던 토크 / 전시연계 행사 / 프로젝트 / 출판(도록, 작품집)

 

픽건설, pr,op

우선 몸이 와 일본에 있는 관계로 토크를 비롯한 연계 행사는 아쉽게도 대부분 참여 못했다. (패널로 초대받는 경우는 있었지만...) 언리밋도 못 갔고 몸이 서울에 없다 보니 텀블벅도 어려움을 겪었다. 전시 위주로 돌아다니고 흥미롭게 지켜본 것은 작가 김동희가 본격적으로 전개하는 픽건설과 pr,op였다. 다른 작가와 협업하여 행사와 상품을 만들고, 또 임시적인 행사를 여는 공간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이벤트 시기만 잘 맞으면.. ;;)

 

파츠서브 X 픽건설

 

5. 올해의 물음표 

<한일교류전: 50/50> (다세대아트살롱)

 

‘물음표’의 의미가 정말 ‘순수하게’ 뭔지 모르는 경우도 있는 한편 ‘이해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이해할 없는’ 의미 또한 포함한다고 할 때, <한일교류전: 50/50>는 후자의 의미에서 물음표가 남는 전시였다. 한국 작가와 일본 작가의 퍼포먼스 및 전시의 기획전인데, 이들이 (기금을 끌어와) 추구하는 교류 혹은 전시, 또는 둘의 결합은 전시공간에 어떻게 펼쳐졌을까? 몇명 작가는 이미 (부정적 의미 없이) 미술관 전시를 통해 일본 혹은 한국에 알려진 바 있다. 예를 들어 아이다 마코토는 교과서적인 의미에서도 일본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다뤄지기도 하고, 최근에 갤러리를 통해서 김홍석을 비롯한 작가들은―작년 모 트리엔날레를 통해서 ‘사회정치적’으로 각인된 작품들과 또 다른 결을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봐도―어느 정도는 당대적으로 소개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막상 전시 공간에 들어가보니까 퍼포먼스 작품의 잔재 혹은 기록들로 ‘전시’를 때려 치우듯이 소개하였고, 그런 한편으로 본인들의 교류의 흔적을 각인시키는 사진 기록들이 나란히 걸려 있어 ‘전시’라는 말의 의미와 결과물이 ‘실적 보고’처럼 와 닿았다. 이번 교류전을 밀도 있는 주제로 (특히나 당시-지금의 국가적 상황을 고려해서) 기획을 했으면 유의미했을텐데, 재팬파운데이션에서 기금을 받아 진행된 전시라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다. 큐레이팅이란 무엇인지, 기금을 받고 오고 가는 교류와 퍼포먼스의 의미가 무엇인지, 끈 건지 안 켠 건지 모르겠는 티비 모니터, 여러 가지 머리가 아픈 요소만 남긴 전시였다. 

 

<한일교류전: 50/50>

 

6. 놓쳐서 아쉬웠던 전시

놓쳐서 아쉬웠던 전시는 늘 꼭 몇 개 생겨버리는데 2019년은 몸이 일본에 있다 보니까 전시 기간이 짧은 전시는 못 본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고스트 샷건>이나 임창곤 개인전 <불거지는 풍경>, 권현빈 <PIECE 피스> 개인전 , <동물성 루프>, <줌 백 카메라>는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나 이미지를 보니 꽤 흥미로워 보였다(그외도 수없이 많다..). 하나씩 그 아쉬움을 여기서 표현해도 좋은데 지인들의 판단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판단이며 못 본 나의 판단이 아니다. 그대신 여기서는 놓친 이유에 따라 아쉬움을 토로하기로 한다. 어떤 이유 때문에 감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는 시기적으로 못 본 전시와 비교하여 후회의 정도를 따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못 본 이유가 황당하면 황당할수록 놓친 전시에 대한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1) 쉬는 날에 감: 성시경 <EXIT, EXIT> (쉬프트)

일본에서 서울로 올 때면 미리 동선을 짜놓는다. 운영시간과 휴관일을 미리 엑셀로 정리한 이른바 ‘특파원 일정’을 만들어 서울에서 전시를 하루 이틀만에 볼 때 활용한다. 비행기표는 대체로 주말이 더 비싸고 평일은 오히려 가격이 싸다. 그래서 웬만하면 티켓을 끊을 때 평일 출국-귀국으로 날짜를 잡아놓는다. 예를 들어 화요일 입국-금요일 귀국으로 끊는다. 그러면 보통 전시장이 쉬는 월요일을 피할 수 있고 주말에 열지 않은 공간 (몇 없지만..)을 방문할 수 있다. 그런데 공간형 및 쉬프트는 수요일에 쉰다. 성시경의 <EXIT, EXIT>을 방문했을 때 하필이면 수요일에 동선을 짜놓아서 갔는데 불이 안 켜져 있었다. 그런데 궁극적인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그때 어두운 공간에서 관리자 분이 나오셨는데 “보여주세요!”라고 용기 있게 부탁을 드리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보여달라고 말을 못한 나 자신에 문제가 있었다. 아아!!

(2) 뜻밖의 공간 공사: 김옥선 <베를린 초상> (아뜰리에 에르메스)

아뜰리에 에르메스 또한 평일 수요일에 문을 닫는 무서운(?) 미술공간이다. 정지현 <다목적 헨리>를 보러 갔을 때 한 번 당해본 적이 있어서 사진가 김옥선의 <베를린 초상>을 보러 갔을 때 빠짐없이 일정을 체크하고 갔다. 그런데 내부 공사중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나선형 계단이 통제되어 있었다. 동선이 애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강남 주변에 겨우 갔는데, 결국 아쉽게도 못 보고 강북으로 올라왔다. 슬픔을 달래려고 압구정로데오 역으로 가는 길에 공차 버블티를 사서 마신 기억만 남았다. 버블티는 맛있었다. 아아!!

(3) 일본 전철 물품 보관함 사건: 정해민 <크로마키> (전시공간) 

일본 가나가와 현 사가미하라에 위치한 파프룸갤러리에서 열린 <한국에서의 8명>전시 (도록 절찬리 판매중! ^^) 철수를 마치고, 작품을 들고 한국에 가기로 했다. 그때 당시 한국에서 쓰던 방도 그렇고 일본에서 새로 들어간 집도 4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작품이 들어간 캐리어를 들고 가는 게 힘들었다 (체력아..). 사가미하라에서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차피 전철 타야 되니까 전철역 물품 보관함에 캐리어를 맡겨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이 안에 들어 있는 캐리어를 큰 보관함에 소중히 넣고 집에 갔다. 집에 와서 SNS를 체크하는데 전시공간에서 열린 정해민 작가의 <크로마키>가 며칠 더 연장된 소식을 봤다. 출국 당일날은 오전 비행기였고 인천공항에서 공항철도를 타서 바로 홍대입구역으로 가면 충분히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사실 전에 갤러리175에서 개인전을 본 적도 있어서 궁금했던 전시였다. 일정상 못 볼 것 같았지만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다소 들뜬 마음에 잠을 못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 전철역으로 갔다. 맡겨둔 캐리어를 꺼내려니 이상하게 문이 열리지 않는다. 계속 안 열려서 급한 마음에 역무원에게 물어봤더니 물품 보관함은 각 전철역에서 관리를 안 하고 보관함 회사가 관리를 한다고 들었다.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오전 9시부터 상담 가능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오전 9시 반이었고 지금은 오전 6시 (참고로 집에서 공항까지 가는 데 2시간 반 정도). 비행기 표를 날리는 것도 아쉬워 캐리어를 안 들고 일단은 전철을 탔다. 빈손으로 가다가 파트너의 조언을 듣고 고민 끝에 결국 일정을 하루 미루기로 하였다. 9시 넘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바로 그날 오후에 회사 상사가 큰 백화점 종이봉투를 들고 직접 사과하러 왔다. 캐리어도 무사히 꺼냈고  선물로 받은 과자(까눌레 등등)를 집에서 먹고 다시 잤다. 아아...

 

7. 2019년의 OOO

 

2019년의 제목

주슬아 <REVERSE EDGE> (공간일리)
박영진 <폼폼/랜드> (공간 가변크기)
최주원 <피티 포티 파티!> (쇼앤텔)
박현정 <웬즈데이 워밍업> (아카이브봄)

글 쓰는 입장 또한 제목은 늘 정하기 어렵다. 전시의 제목이 모든 것을 꼭 말해주진 않지만, 실물을 보기 전에 나오는 홍보물이나 정보에서 제목이 주는 임팩트는 기대감을 심어준다. 위에 소개한 네 전시는 작품을 보기 전에 전시 홍보 차원에서 어감이나 단어 선택 때문에 기억에 남았을 뿐만 아니라 실제 전시를 꽤나 잘 대변해주는 제목이었다. 주슬아 작가의 <REVERSE EDGE>는 캔버스의 뒷면과 앞면, 그리고 3D 모서리-윤곽을 뒤집고 또 방향을 바꾼 작품을 전시하면서,  오카자키 교코의 만화 제목을 오독한 차원 (원래는 River’s Edge)을 작품에서 불확실하게 물감이 스며 나오는 상이 나타나는 차원으로 연결시켰다. 박영진의 <폼폼/랜드>는 전시공간을 놀이터처럼 만든 점 뿐만 아니라 롤러코스터나 미끄럼틀을 탈 때 시점이 바뀌는 것처럼, 작품에서 시점과 보는 각도의 변화가 어떻게 작품의 형식/폼(form), 말하자면 입체와 평면 사이를 오가는지 포착해준다. 

한편 박현정의 <웬즈데이 워밍업>과 최주원의 <피티 포티 파티!>는 제목이 전달하는 어감 때문에 작품을 제목이 개념적으로 정리하기에 앞서, 보는 사람들에게 전시 자체에 흥미를 강력하게 가져다 주었다. 이전 전시의 <이미지 컴포넌트>와 또 다른 어감의 <웬즈데이 워밍업>은 여러 이미지/상이 배치되고 나열되는 시각적인 이미지와 맞물렸고, <피티 포티 파티!>는 피티한 느낌과 파티를 열고 즐기고 싶은 마음이 오가는 전시 설명문과 공간에 배치된 깜찍한 오브제와 설치물이 인상적이었다. 

 

(왼) 주슬아 <REVERSE EDGE> (오) 박영진 <폼폼/랜드>

(왼) 최주원 <피티 포티 파티!> (오) 박현정 <웬즈데이 워밍업>

추신: 2019년 한 해를 되돌아보고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작년에 전시 기획도 일본에서 담당하게 되었고 가을에 비평 공모 상도 받았습니다. 2020년대를 달려가는 111명 중의 한 명으로 선정되었고, 그외 여러가지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럼에도, 일본과 한국 사이를 심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오가고 있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겸손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