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전시 결산 - 조은채

 

👩🏻‍💻2019 전시 결산📊 - ✍️조은채

 

2019년에는 졸업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작년보다 전시를 많이 못 봤다. 보고 싶었던 전시를 놓치기도 했고, 좋았던 전시를 촘촘하게 들여다보거나 곱씹어볼 여유도 이래저래 없었던 것 같다. 글로 감상을 남길 수 있었던 전시와 작품의 경우에는 그래도 덜했지만, 2019년에 보았던 전시들은 대체로 어렴풋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전시 결산을 쓰기 전에 유독 고민이 많았던 것 같고,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조금 막막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가장 좋았다거나, 가장 인상 깊었다거나 하는 말을 덧붙이기는 조심스러워서 문항들의 이름을 조금씩 바꿔서 사용했다. 한 편의 글로는 진전시키지 못했던 짧은 2019년의 메모들을 정리하고 남겨둔다는 느낌으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1. 인상 깊었거나 좋았던 전시

 

이의성, <온도˚경>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온도경은 눈금이나 ‘도(degree)’라는 개념이 아직 없는 초기 형태의 온도계이다.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측정의 결과는 다소 상대적이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어느 것이 더 뜨겁거나 차갑다는, 고정점이 없어서 유동적인 인간의 감각에 기대는 방식. 온도경은 온도를 ‘수치’가 아닌 ‘정도’로만 가시화하고, 그 결과는 객관적이거나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수치화되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의 온기나 냉기를 느끼는 개인의 감각 자체가 희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온도경이 느낄 수 있지만 볼 수는 없는 온도를 가리킨다면, 이의성의 <온도˚경>은 볼 수 있지만 느낄 수는 없는 온도를 시현한다. 우리는 <온도˚경>에서 온도 혹은 습도를 가시화한 표지물을 마주치게 된다. 김이 서린 거울, 타오르고 있는 난로, 전시장의 벽을 지키고 있는 라디에이터, 창문을 감싼 에어캡.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실제의 온도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작가의 손을 통해 만들어진, 대상의 기능이 아닌 외관만을 따온 조형물이기 때문이다. 보이기는 하지만 느낄 수 없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온도. 우리는 이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온도를 나름대로 상상하게 되고,  <온도˚경>은 관객의 감상에 내밀하고 개인적인 영역을 마련해준다.

 

권세정, <아그네스 부서지기 쉬운 바닥> (인사미술공간)

작가가 게임 더 심즈(The Sims) 시리즈의 NPC인 아그네스 크럼플보텀(Agnes Crumplebottom)과 전시 전체를 관계 맺게 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게임의 고집 센 노년 여성 캐릭터가 처음 봐서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제목부터, 지하 1층의 쨍한 파란색 바닥, 작가의 늙은 개 밤세, 여성 혹은 피해자의 이미지를 독특하게 아우르고 있었다.  <아그네스 부서지기 쉬운 바닥>에 대해서는 리뷰를 쓰기도 했다. (https://t-504.tistory.com/74)

 

김희천 <탱크> (아트선재센터)

김희천의 <탱크>에서는 영상의 중심적인 장면이나 내용보다도 오히려 사소할 수 있는 부분에 눈길이 갔다. <탱크>가 진행되었던 아트선재센터의 3층은 너무 어두웠고, 겨우겨우 영상이 재생되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40분가량 진행되는 영상을 보고 나면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서 들어올 때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전시장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영상 ‘탱크’를 감상할 때에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은 것 같다. 영상 ‘탱크’의 대체로 어두운 화면, 다소 정신없는 사운드, 빠른 장면 전환, 뒤섞인 여러 겹의 이야기들은 생경함을 자아낸다. 하지만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듯이 이 생경함에도 차차 익숙해지고, 이내 김희천의 영상으로 들어가는 여러 경로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영상의 화자가 감각 차단 탱크의 시뮬레이션 속에서 죽은 동료의 손(혹은 그래픽화된 손)을 바라보던 장면의 잔상이 유독 지워지지 않는다. 작가는 해저 동굴에서 죽은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시뮬레이션 훈련을 하는 ‘탱크’의 주된 이야기 축 중 하나를 감성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김희천의 영상을 보는 나는 의외의 장면에서 항상 어떤 정서적인 부분을 발견하고, 그 곳에 시선이 머무르는 것 같다. 

 

<더 스크랩: 해피 투게더>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내가 고른 10장의 사진들로 만들어진 스크랩북이 홍콩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달되었다고 생각할 때면, 내가 모르지만 알고 싶은 누군가와 연결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레안드로 에를리치: 그림자를 드리우고>(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는 정말 너무 좋았는데 휴관이 되어서 아쉽다. 착각해서 정해진 동선을 완전히 거꾸로 돌았는데, 이 동선도 의외로 괜찮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동선이 너무 좋다고 일행들과 공감했었기 때문에…) 확실히 작업의 스케일이 컸고, 큰 규모의 작업만이 줄 수 있는 감각을 잘 구현했다고 느꼈다. 하나의 작품을 위층과 아래층에서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규모와 그에 따른 즐거움. 이번 전시에서처럼 그림자가 감상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림자가 펼쳐질 수 있는 여유 공간부터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랬을까? 리킷의 개인전 <슬픈 미소의 울림>(아트선재센터)은 잊어버리고 있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예전에 살던 동네의 어떤 카페는 밤이 되면 반대편 건물의 빈 공간(벽)에 예전 영화들을 영사해주곤 했었다. 주민들에게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 소리 없이, 그리고 별도의 스크린이 없어서 밤의 어두움에 의지한 채로 틀어져 있던 영화들. 그때 느꼈던 괜한 그리움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회화 전시로는 박경률의 <On evenness>(백아트 서울)와 노은주의 <Walking―Aside>(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이 좋았다. (박경률의 <On evenness>는 퍼블릭아트에 따로 리뷰를 쓰기도 했다.)

 

이의성 개인전 <온도˚경>(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왼) 권세정 개인전 <아그네스 부서지기 쉬운 바닥>(인사미술공간),     (오) 김희천 개인전 <탱크>(아트선재센터)

 

 

2. 인상 깊었던 미술관에서의 퍼포먼스

 

카럴 판 라러, <존재하지 않는 퍼포머>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처음으로 티켓팅(?)에 성공했었다. 무대에서 퍼포머의 존재성을 지우기 위한 실험으로, 퍼포머인 카럴 판 라러는 최면에 걸린 채로 무대에 오른다.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은 퍼포머의 몸은 3명의 무용수에 의해 정해진 안무를 수행한다. 퍼포먼스가 시작되기 전에 퍼포머 카럴에게 최면을 거는 장면부터 보여주었는데, 그 이후로 카럴이 축 늘어진 채로 의식까지 없어보여서 조금 조마조마했다. 술에 취하거나 잠에 빠져서 깨어있지 않은 사람의 신체가 평소보다 훨씬 무겁고 옮기기도 힘들다고 하던데, 실제로 3명의 무용수 역시 힘겹게 안무를 이어나가는 것처럼 보여서 인상적이었다. 공연 중간에 퍼포머를 관객의 무릎 위로 올린 채로 이동시키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 퍼포머의 몸이 너무 사람의 신체 같지 않게 물렁해서 혼자 화들짝 놀랐었다. 퍼포먼스 이후에 진행된 토크에서 최면 상태에 완전히 들어간 사람의 몸은 극도로 이완되어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워진다는 말을 듣고서야 의문을 풀 수 있었다.

 

강혜림 <Breathing Space> (<막간극>(인사미술공간) 연계 퍼포먼스)

인사미술공간 1층에서 진행된 퍼포먼스였는데, 퍼포먼스를 정말 말 그대로 코앞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식물의 광합성과 사람의 호흡을 둘 다 공기의 움직임(흐름)이라는 점에서 연결 짓고, 이 비가시적인 과정을 신체로 그려냈다.

 

(왼) 카럴 판 라러 퍼포먼스 <존재하지 않는 퍼포머>(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오) 강혜림 퍼포먼스 <Breathing Space>(인사미술공간 <막간극>)

 

 

3. 올해의 발견 

 

온수공간

처음 방문했을 때 공간 자체가 너무 독특하고 예뻐서 놀랐다. 날씨가 추울 때 가서 그랬는지 공간 이름인 온수공간도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적당히 춥고 오히려 따뜻한 기색이 강했던 올해의 겨울 날씨 같은 느낌❄☃️

 

마테리알(ma-te-ri-al)

동시대 한국 무빙 이미지를 주로 다루는 온/오프라인 비평 플랫폼. 특히 마테리알의 소개 글이 다른 온라인 비평 플랫폼들과 느낌이 달라서 흥미로웠다. 와우산 타이핑 클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온라인 비평 플랫폼의 ‘소개’나 ‘ABOUT’ 같은 페이지는 주로 구성원들에 대해 소개하고 앞으로 무슨 글이 올라온 것인지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신학기에 학급에서 하는  자기소개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적절한 “힘”과 “속도”를 갖춘, “스루패스”로서의 비평을 지향하겠다는 마테리알의 소개글은 길이도 꽤 길었고, 마니페스토(?) 같은 느낌이 나서 재미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메타비평을 주제로 한 창간 기념 토크 <비평의 비평>은 소개 글에서 느껴지는 역동적인(?) 분위기와 조응하는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https://ma-te-ri-al.online/

 

(왼) 온수공간 전경, (오) 마테리알(ma-te-ri-al) 로고

 

 

4. 올해 인상깊었던 강연과 토크

 

유운성 선생님의 '미션 임파서블: 영상과 전시 공간의 몽타주에 대하여' (시청각, 9월 28일)

대부분의 강연과 토크들이 강연 당일 외에는 다시 듣거나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아쉽게 느껴지게 하는 시간이었다.

 

 

5. 올해의 물음표 

 

김효재 <디폴트 Default> (OS)

<디폴트>는 하루 동안 OS에서 열렸던 개인전과 엘리펀트 스페이스에서 열렸던 전시 연계 스크리닝을 모두 보게 되어서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같은 영상 작업을 전시/상영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전시장/상영관(엘리펀트 스페이스를 스크리닝 당시의 일시적 상영관이라고 전제한다면)이라는 다른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두 가지 방식/공간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이 있었고, 작업의 특성상 전시의 형태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역시 영상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것은 스크리닝 쪽이었다. 작가 본인이 두 가지 방식/공간의 차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는데, 같은 날 진행되었던 아티스트 토크를 듣지 못해 여전히 아쉽다. <디폴트>를 더 잘 볼 수 있는/보여줄 수 있는 디폴트값은 무엇일까?

 

김효재 개인전 <디폴트 Default> (OS)

 

 

6. 놓쳐서 아쉬웠던 전시와 작품

 

2019년에는 놓친 전시와 작품이 너무 많지만, 지금 떠오르는 것은 크게 두 개이다. <미디어펑크>(아르코미술관)는 봤지만, 전시 안에 있었던 파트타임스위트의 ‘나를 기다려, 추락하는 비행선에서’를 결국 못 봤다. 2016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에서도 보지 못했었는데 계속해서 놓치는 것 같다. 😥🍃 장서영 작가의 작업은 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항상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꼭 챙겨보고 싶었지만, <시작하자마자끝나기시작>(두산갤러리)도 놓쳤다.

 

(왼) 파트타임스위트 '나를 기다려, 추락하는 비행선에서', (오) 장서영 <시작하자마자끝나기시작>(두산갤러리 서울)

 

 

7. 2019년의 OOO

 

2019년의 제목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 <색맹의 섬>  같은 2019년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렸던 전시의 제목들

 

2019년의 과연/의외로 놓친 전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바바라 크루거 : Forever>와 서울시립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는 과연/의외로 놓쳤다. 못 볼 것 같은 예감이 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못 볼 줄은 몰랐던 대형전시들…🍂🍃

 

 

(왼) <데이비드 호크니>(서울시립미술관), (오) <바바라 크루거 : Forever>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사진 출처

이의성 작가 웹사이트 (Photography by Jonghyun Seo)

https://www.uesunglee.com/

아르코미술관 및 인사미술공간 

https://arko.or.kr/

국립현대미술관

https://www.mmca.go.kr/

아트선재센터

http://www.artsonje.org/

온수공간

https://www.onsu-gonggan.com/

OS

http://ososos.ne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