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전시 결산 - 이상엽

 

👩🏻‍💻2019 전시 결산📊 - ✍️이상엽

 

 

1. 개인전 중 가장 좋았던 것

 

강정석 <Roll cake: 강정석 드로잉전>(ONEROOM)

박경률 <ON EVENNESS>(백아트)

정희민 <An Angel Whispers>(P21)

전현선 <붉은 모서리, 녹색 숲>(P21)

 

원룸에서 열린 강정석의 이름부터 귀여웠던 드로잉전 <롤 케이크>. 작가가 붙인 제목 ‘롤 케이크’는 정겨움과 소박함을 풍기는 귀여운 의미 뿐 아니라 그가 사용하는 작업 방식 중 하나인 ‘롤케이크식 편집법(펼친 빵 위에 크림과 건포도 깔듯히 편집 창에 그림이나 영상을 깔고 말아서 자른 모습을 보여주는 롤케이크 느낌의 편집법)’에서 따온 이름이기도 하다. 작가는  전시장 벽면 한쪽을 크게 차지한 롤 케이크를 그렸을 뿐 아니라, 전시장 중앙 테이블에는 실제로 롤 케이크(어떤 경우는 롤 케이크 사진)가 놓이기도 했다. 전시 구성이나 공간 활용이 좋기도 했고, 많이 봐오던 작가의 영상 작업들이 아닌 일련의 드로잉 작업들을 재배치해 흥미로웠다. 드로잉마다 작가가 붙여 둔 캡션을 읽어 내려가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그중에서도 ‘나무에 피어싱을 해보고 싶어서 그린 것. 여자친구가 나무가 무슨 죄냐고 해서 그림만 그림’을 보며 유독 웃었다. 그리고 2018년 송은미술대상전에 이어 흥미로웠던 박경률의 작업을 보다 많이, 집중해 볼 수 있어서 좋았던 2019년 백아트에서의 개인전 <ON EVENNESS>. 회화와 여러 구조물들을 곳곳에 배치해놓은 전시장에서 매체의 조화와 작가의 위트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오렌지 두어 개가 캔버스 가장자리를 받치며 등장했다.) 2019년 좋았던 개인전 중 전현선과 정희민의 전시는 P21 공간에서 펼쳐졌다. 2018년 윤향로의 개인전 <Surflatpictor>도 그랬지만, P21에서 열리는 젊은 작가들의 개인전 대부분이 만듦새 좋은 전시로 기억에 남는다. 특히 정희민의 큰 사이즈 회화들은 뚝뚝 떨어지는 물감의 물성을 보는 재미가 아주 좋았고, 전시에 포함된 모든 작업에서 높은 완성도가 느껴졌다. 이전과 다르게 이 전시에서는 영상 작업이 포함되었는데, 다른 회화들과도 잘 연동되었고 영상 자막으로 표기된 (흡사 작가노트처럼 느껴지는) 텍스트 또한 작업을 읽어내는 데 한층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연말에 열린 전현선의 개인전은 붉고 푸른 색감들 때문인지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감도는 귀여운 전시였다. 재밌었던 건 새로 사용하기 시작한 재료인 잘라낸 부직포를 겹겹이 덧붙여 만든 모양들로, 부직포 작업들은 멀리서 보면 벽에 붙은 단면의 조각처럼 보이는데 가까이서 관찰했을 때만 그 재료와 겹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P1 공간에서 새로운 재료의 시도가 돋보었다면, P2에서는 이전 작업과 이어지는 회화들로 배치되었는데 이 역시나 좋았다.   

 

(왼) 강정석 개인전 <Roll cake: 강정석 드로잉전>(ONEROOM), (오) 박경률 개인전 <ON EVENNESS>(백아트)

(왼) 정희민 개인전 <An Angel Whispers>(P21), (오) 전현선 개인전 < 붉은 모서리, 녹색 숲>(P21)

 

2. 기획이 인상깊었던 전시

 

<심우윤 개인전: 모란과 게>(원앤제이 갤러리)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아트선재센터)

<밤이 낮으로 변할 때>(아트선재센터)

<window>(pr,op)

<더 스크랩: HAPPY TOGETHER>(왕산로9길 24)

 

<심우윤 개인전: 모란과 게>는 ‘최근 그래픽 디자인 열기(Open Recent Graphic Design)’를 의미하는 ORGD의 2019년 전시로,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전시라 그런지 포스터 디자인에서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작업물들을 보는 시각적 재미가 쏠쏠했고, 심우윤으로 상정되는 인물이 인터뷰하는 영상 내용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더 이상하고도 재밌는 일은 ‘심우윤’이라는 존재가 가상 인물임을 비교적 최근 트위터에서 누군가의 감상평을 통해 알게 된 점이었다. 전시에 의도적으로 숨겨둔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이렇게 뒤늦게 알게 되어 머쓱하면서도 다시금 기획이 더 흥미를 더해 다가왔다. 그리고 2019년에는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듦새 좋은 전시들을 많이 본 기억이 있다. 야콥 파브리시우스 기획의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와 김해주 기획의 <밤이 낮으로 변할 때>가 그중에서도 특히 좋았는데, 전자의 전시는 2, 3층 공간의 서로 다른 온도차와 구획이 좋으면서도 작업 하나하나가 공들여 만들어진 듯한 밀도 높은 느낌을 주었다. 3층 창고 공간의 활용은 다른 이가 올린 사진을 보고 갔음에도 실제로 마주했을 때 그 풍경이 (좋은 의미로) 좀 충격적이면서 놀라웠다. 후자의 전시는 꽤 담담한 어투의 전시 서문 쓰여 있었는데, 그 담담함이 오히려 인상깊었다. 큰 자극은 없으나 울림이 있고, 뭐랄까 보는 동안 마음이 편했던 전시였다. 여성 기획자와 여성 작가들이 구성한 전시의 정돈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pr,op에서 봤던 전시 <window>는 앞서 <밤이 낮으로 변할 때>에 참여한 송민정, 안초롱, 식물상점(강은영)이 아트선재 전시를 보이기에 앞서 프리뷰로 선보인 전시로, 예약 후 특정 시간에만 관람할 수 있었다. 친구 두 명과 함께 가서 해당 공간에는 우리 셋만 오롯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예약제가 가져다 주는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세 작가가 특정 상황과 분위기를 펼쳐 두고 먼저 떠난 자리에서 여자 셋이 머물며 이모저모 음미하며 봤더랬다.(1층 공간에서 따뜻한 음료와 랜덤 기념 사진을 주셔서, 그리고 마침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2019년 마지막 더 스크랩은 HAPPY TOGETHER를 제목으로,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는 중국 정부를 향한 홍콩 시민들의 시위에 사진으로 함께하는 기획이었다. 관객이 스크랩한 사진 중 스크랩북 1부는 자신이, 다른 1부는 홍콩 시민에게 전달되었는데, 기획 의도에서부터 실제 구현까지 의미깊고 마음이 가는 기획이었다. 당시 스크랩북에 메모도 새겨 전달되는 줄로 착각하고 사진 번호를 다 적은 후 제일 밑 메모 칸에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중에서 “해방된 자가 본래 할 수 있는 것은 해방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적은 기억이 난다. 내 스크랩북을 홍콩의 누군가가 잘 건네받았을까? 

 

(왼) <심우윤 개인전: 모란과 게>(원앤제이 갤러리), (오)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아트선재센터)

(왼) <밤이 낮으로 변할 때>(아트선재센터), (오) <더 스크랩: HAPPY TOGETHER>(왕산로9길 24)

 

3. 올해의 발견 

 

무니페리

이동훈

 

무니페리(Mooni Perry)는 2019년 우정국에서 열린 개인전 <횡단>을 보며 처음 알게된 작가이다. 이후 찾아보니 한국에서 선보인 작가의 첫 개인전이었다. 탈영역우정국 2층 공간만을 사용해 작업을 펼쳐 보였는데, 공간과 매체 활용이나 작업 배치 등에서 노련함이 느껴졌다. 전시 주제 또한 흥미로웠는데, <횡단>은 페미니스트이면서 채식주의자인 작가의 정체성과 관심사를 작업으로 연결시킨 전시였다. 영상/인터뷰/설치 등의 다양한 매체를 엮어 한 주제로 ‘횡단’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 작가의 고심과 몰두가 있었음을 느꼈다.(이후 검색한 바 무니페리는 회화 작업도 다수 전개한 바 있었다.) 또 한편 흥미로웠던 점은 작가가 해외에서 활동한 이력이 더 많은 탓인지, ‘무니페리’로 검색했을 때보다 ‘Mooni Perry’로 검색했을 때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작가의 홈페이지 또한 영어 이름 검색 중에 발견했다. (무니페리의 홈페이지 https://www.mooniperry.com)

이동훈은 2019년 말 유독 눈에 들어 온 작가다. 회화와 조각을 함께 병행하지만 나의 경우 그의 조각 작업들이 더욱 눈에 띄었다. 나무를 깎아 식물, 화분 형태를 구현한 작업에서부터 시작해 pr,op에서 처음 마주한 고양이 조각은 정말이지 갖고 싶었다. 일우스페이스의 그룹전 <눈 깜짝할 새>에서 선보인 중간부에 각각 색이 다른 뱀을 감은 고양이 조각 두 점은 그 위트와 어우러짐이 대단했고, 앞으로 펼칠 그의 작업들이 기대된다.       

 

무니페리 개인전 <횡단>(탈영역우정국)

이동훈, '고양이와 박새와 풀'(2019)

 

4. 올해 인상깊었던 프로젝트 / 비평

 

(Not) Your Typical Narcissist

최유미 「무니페리의 <횡단>, 접촉지대에서 예술하기」

 

프로젝트 (Not) Your Typical Narcissist는 웹사이트 소개상 2018년 말에 오픈한 것으로 확인되지만 본인은 2019년에 발견한 프로젝트이기에 해당 문항에 포함했다. 유지원 기획자가 제작한 해당 프로젝트/웹사이트는 “시각 문화와 미술 실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성의 자기 전시와 비/관습적인 여성성의 표현에 대한 리서치 프로젝트”로 소개된다. 해당 사이트에는 박보마, 송민정, 최윤, 한진 등  동시대 한국 여성 미술가와 작업에 대해 나눈 대화들과, ‘여성성과 시각문화’를 주제로 다룬 흥미로운 글들이 다수 소개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마릴린 먼로가 독서하는 사진을 보다 — Looking at Photographs of Marilyn Monroe Reading」 글을 읽고 보는 재미가 좋았다(https://notyourtypicalnarcissist.com)

최유미의 글  「무니페리의 <횡단>, 접촉지대에서 예술하기」는 무니페리의 개인전 <횡단>을 읽는  비평 글이다. 올해의 발견으로 꼽은 작가이기도 한 무니페리의 개인전 <횡단>에는 최유미의 인터뷰 영상이 작업 일부로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해당 글은 이때 본 인터뷰 내용과도 겹쳐 있다. 인터뷰에서는 “관계는 복수의 항들이 엮여 만들어진다”, “완전한 능동, 완전한 수동은 없다” 등 비거니즘에서 파생된 역학 관계를 무니페리의 작업과 엮으며 꼼꼼히 읽어내고 있다. (https://www.mooniperry.com/critic-/----------------------------- 해당 페이지에서 전문을 읽을 수 있다.)

 

  (Not) Your Typical Narcissist 웹사이트 일부

 

5. 올해의 물음표

 

구동희 <딜리버리>(아트선재센터)

 

전시장 입구에 놓인 고양이 스크래쳐와 전시의 연관성을 무엇이었을까? 빙글뱅글 전시장을 돌다 발견한 계단형 피자 구조물의 맨 꼭대기에 놓인 소변 누는 청동 소년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전시장 어느 구석에 놓인 달걀 모형 꾸러미들은 다 무얼까 ?____?

 

구동희 개인전 <딜리버리>(아트선재센터)

구동희 개인전 <딜리버리> 전시 전경

 

6. 놓쳐서 아쉬웠던 전시

 

이유성 <Jane>(위캔드) 

<색맹의 섬>(아트선재센터)

글로리홀x람한 <Ghost Shotgun>(시청각)

 

이유성의 개인전 <Jane>은 전시가 끝난 뒤 발견한 작업 사진 한 장을 보며 놓친 것을 무척 아쉬워라 했었다. 그 작업은 피어싱을 잔뜩 달아 놓은 귀 모양 조각으로 사진만 보고서도 그 입체감이 생생했다. 신체의 일부를 흥미롭게 표현하고 있었고 작가의 위트가 느껴졌다.(기회가 되면 꼭 실물로 만나고 싶다.) <색맹의 섬>은 비교적 여유있는 전시 기간으로 진행되어 일정을 뒤로 미루다 놓쳤다. 다른 분들이 올린 전시 사진들을 보며 놓친 것을 많이 후회했다. <Ghost Shotgun>도 마찬가지로 많은 분들의 알록달록한 전시 리뷰 사진들이 잔뜩 올라온 것을 보며 두 눈으로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했다. 전시는 여름 밤 시청각 장소 활용을 아주 잘했을 뿐더러, 글로리홀과 람한이 함께 구현한 결과물은 사진으로만 봤을 뿐인데도 그렇게 영롱할 수가 없었다...

 

순서대로 1. 이유성 개인전 <Jane>에 포함된 작품 중 하나, 2. <색맹의 섬>(아트선재센터), 3. 글로리홀x람한 2인전 <Ghost Shotgun>(시청각) 

 

7. 2019년의 OOO

 

2019년의 벽지들

양혜규 <서기 2000년이 오면>(국제갤러리)

<사이키델릭 네이처>(보안여관) 중 정희민의 작업

무니페리 <횡단>(탈영역우정국)

 

순서대로 1. 양혜규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 벽지, 2. <사이키델릭 네이처> 중 정희민의 벽지, 3. 무니페리 개인전 <횡단> 벽지(사진 출처: 아트바바)

 

2019년의 카페트

권세정 <아그네스 부서지기 쉬운 바닥>(인사미술공간) 

김대환 <안녕 휴먼?>(아트스페이스풀)

 

(왼) 권세정 개인전 <아그네스 부서지기 쉬운 바닥>의 카페트, (오) 김대환 개인전 <안녕 휴먼?>의 카페트

 

2019년의 닮은꼴 전시

2019년 전시들 중 전통과 자연을 현재 맥락과 연계해 재해석한 전시들이 엉켜 떠오른다. 그 연결고리로 두 개의 기획전과 한 개의 개인전을 내맘대로 엮어 본다. 세 전시는 기획 의도나 개념에 있어 상관성을 지니는 듯 하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기행문학이었던 ‘유산기(遊山記)’ 전통을 근대 이후에 생긴 여가로서의 등산문화와 연결 짓는 <X의 산>(산수문화), 인공 낙원의 혼종적 자연을 지칭하는 사이키델릭을 주제로,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적 역사를 이야기하는 <사이키델릭 네이처>(보안여관), 마지막으로 진시황의 신하 서불의 불로초 탐사를 모티브로 가져와 분신술 형식을 참조한 불로초 조각을 제작한 문이삭의 개인전 <분신술: 서불과차>(팩토리2). 

 

순서대로 1. <X의 산>, 2. <사이키델릭 네이처>, 3. <분신술: 서불과차>

 

 

 

*사진 출처

무니페리의 <횡단> 전시 전경 외에 모든 사진은 해당 전시들이 열렸던 미술관/전시공간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