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전시 결산 - 곽현지

👩🏻‍💻2018 전시 결산📊 - ✍️곽현지

1. 가장 좋았던 개인전 + 2. 기획 자체가 좋았던 전시

박소현, 이은지 <짐과 요동> (공간형/중간지점) + 박경진 <현장> (인사미술공간)

종종, 미술의 존재감이 너무나 먼지같아서 미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사라져도 이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걸 생각하면 서운(?)할 때가 있다. 박소현과 이은지의 2인전 <짐과 요동>과 박경진의 개인전 <현장>은 이런 나약한 미술과 미술에 대해 글을 꼼지락거리는 더욱 나약한 나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짐과 요동>은 물음표로 가득찬 전시였다. 전시의 리플렛이 주는 정보는 제한되어 있고, 전시공간의 사물이 작품인지 그저 보관되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고, 이 작업은 2명 중 어떤 작가의 작업인지, 만져도 되는지, 살짝 만져본 뒤 작품의 흔해 빠진 물성을 확인하고, 이건 가져가도 되는데 저건 가져가도 되는지, 이것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옮겨질 것인지, 어쩌자고 이 모든 것들을 방치(?)해둔 것인지 영양가 없는 의문을 품다가 창문 바깥의 을지로 풍경을 한번 보면서 내가 찾아 헤맸던 공간의 바깥은 이랬구나 생각을 하며, 미술가의 작품을 보고 떠올리게 되는 심상 이전에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하는 생각들이 선험적으로 나를 찌르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하찮은 사물에 지나지 않는 작품들의 여정과 그들의 예상된 말로를 보기 위해 어느 수많은 섬같은 공간(도심에 있지만 작은 점 같은)을 가야한다. 여기인가? 두리번 거리며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군가 미술은 무엇인가…. 어찌됐든 부유하고 있긴 하지만 너무 작아 주어진 몫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건지 불투명한 미술, 이것들이 주는 모호한 상황들. <짐과 요동>은 미술이 경험되고 소비되는 방식을 떠올리게 하며, 물질로 가득찬 공간임에도 어떤 상황을 상기시키는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반기에 본 전시 중에선 <짐과 요동>이 머릿속에서 먼지처럼 떠다니다, 한 해가 저물기 직전에 본 <현장> 역시 나의 현실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인사미술공간에 들어서서 작가의 작업을 멀찍이 보자마자 전통적인 의미에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다루는 제재는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인물과 공간이 흐릿하게 표현된 그의 캔버스는 자아실현도 해야하고 생계도 이어나가야하는 두 겹의 삶과 연결되는 듯 했다. 전시를 본 날 밤 유투브에서 방탄소년단의 ‘Idol’ 뮤직비디오를 보게되었는데 어찌나 우연의 일치인지 춤추는 방탄소년단의 뒤에는 작가가 작업한 세트장이 있는 것이 아닌가. idol이든 artist든 어떤 것으로 호명되어도 개의치 않는 ‘Idol’의 노랫말은 화자 스스로를 무한 긍정하고 있는데, 나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김민희 <오키나와 판타지> (합정지구)

오키나와에 대한 여행기나 추억이라고 생각될법한 제목과 달리 여성에게 가해지는 편향적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망상을 펼쳐내보이는 점이 재밌었다. 오키나와인지 알 수 없지만 덥고 습한 이미지를 가진 <오키나와 판타지>의 작업들은 ‘힘’이라는 관념이 주는 이미지를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작가가 가진 주제의식에 충실하면서 단단하고 고정되지 않은, 가변적이고 흐물흐물한 힘을 느꼈다.

이미정 <The Storage-room with Lee Mijung> (소쇼룸)

소쇼룸의 문을 열기 전에 항상 소쇼룸의 카멜레온같은 유연함에 설레곤 한다. 특정한 공간에 잘 어울리는 작업을 연출하기 위해 공간 전부를 바꾸어야 하는 그런 상황에 대한 유연함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미정 작가의 작업을 실물로 본 것은 2015년 커먼센터 <혼자 사는 법> 때였다. 판판한 면을 이어맞춰 공간을 채운 명랑한 작업. 주로 평면 작업을 보이는 협소한 소쇼룸 공간에서 조각으로 분류될 법한 작가의 작업을 어떻게 선보일 것인가? 하는 질문을 안고 갔는데, 입체를 이루는 각각의 면을 분해하여 디스플레이하고 더불어 보관 방법까지 쉽게 해결한 이 전시는 리빙 스페이스와 작품을 패키지로 제안하는 소쇼룸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김중업 다이얼로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이 전시에서 크게 기억에 남는 것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첫 번째 섹션의 거울이다. 그의 건축물을 담은 이미지들은 흑백과 컬러 양면으로 배치되었는데,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 이미지들이 흑백으로 보이다가 동선에 따라 이동하면 거울에 비친 이미지의 뒷 모습을 통해 흑백 이미지들이 모두 컬러 이미지로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전시에서 선보인 다양한 건축사진이다. 기존의 건축 아카이브에서 사진가들에게 새롭게 신작을 의뢰해, 과거의 건축사진과 새로이 업데이트된 사진의 병치가 재미있었다. 하반기에는 어쩌다 과천관에 3-4번 정도 간 것 같은데, 그 때마다 <김중업 다이얼로그>를 봤지만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고, 그럼에도 이 전시를 온전히 다 봤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작품의 위상을 넘나드는 아카이브 자료와 건축의 다양한 요소를 기록한 건축사진 등 풍부한 시각자료를 보여주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유영진 ‘캄브리아기 대폭발’ 시리즈 <캄브리아기 대폭발> (인사미술공간), <Take me somewhere nice> (위켄드)

도시에 새겨진 풍화의 흔적에 관심을 보이는 작업을 좋아한다. '캄브리아기 대폭발' 시리즈는 부수고 밀어버리는 서울의 기록사진 같은 작업. ‘캄브리아기 대폭발’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앞서 업로드한 리뷰 ‘우리가 딛고 설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https://t-504.tistory.com/61)를 참조.

<짐과 요동> (중간지점) 전경

<김중업 다이얼로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경

3. 2018년의 발견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미술관의 프리오픈 전시에서 본 소장품들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신사옥만큼이나 (여러가지 의미에서) 반짝거렸다. 미술에 큰 돈 쓰는 개인/기관의 존재는 소중하다.

우란문화재단

전혀 알지못했던 공간이었으나, 성수동 전시 동선을 짜는 와중에 우뚜기(@oottoogi)님의 추천에 따라 방문하게 되었다. 전통, 특히 춘앵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전시였는데 다른 장르와 다른 시간을 접합했을 때 느껴지는 이질감이 없었고 전시가 보여지는 모습에 신경을 많이 쓴 탓에 눈이 즐거웠다. 비록 이후에 이 공간에 가보지는 않아 전반적인 컨셉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기대가 된다.

왕산로9길 24 삼육빌딩

엄밀히 말하면 ‘올해’의 발견은 아니다. 사진 전시/판매 플랫폼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했던 <더 스크랩> 이 2017년 이곳에서 열린 이후로 다신 신설동에 갈 일이 없을줄 알았건만, 전시공간으로서 이름을 아직 갖지 못한 이 공간은 2018년에도 몇 개의 전시를 꾸준히 포용했다. 왕산로9길 24 삼육빌딩은 대단한 특징은 없으나 가변적으로 사용가능한 공간을 (기금과 후원을 통해) 섭외한다거나, 미술 씬의 중심에서 벗어난 외진 곳에도 스마트폰을 통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는 것과 같은 현재의 경향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APMA, The Beginning>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전시장 입구에서

<이브>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왕산로9길 24 삼육빌딩

4. 인상깊었던 토크 / 전시연계 행사 / 프로젝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8 하반기 동시대문화예술강좌 - 조주연 ‘미술과 번역’

그간 주목받지 않았던 미술책과 번역을 주제로 강연자가 번역해온 외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잘된 번역과 그렇지 않은 번역에 대해 강의를 하셨다. 번역을 마음먹은 계기부터 실제로 책이 출판되기까지(혹은 그렇게 되지 못했던 경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들으며 강연자의 번역을 향한 열정과 꼼꼼함을 느꼈다. 번역자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김중업 다이얼로그> 전시연계 워크숍 - ‘국립현대미술관 건축전시, 다시보기’

국립현대미술관의 역대 건축전시와 미술관이 수행하고 있는 건축아카이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전시 관련 리플렛과 출판물과 정기용, 김종성 아카이브 등을 볼 수 있어 목적에 충실했던 워크숍이었다. 아카이브를 직접 열람할 수 있어 좋았고 건축가들이 사용했던 다양한 정보저장매체가 기억에 남는다.

'국립현대미술관 건축전시, 다시보기' 워크샵 중에

5. 2018년의 물음표

<아크로바틱 코스모스> (원앤제이 갤러리)

손현선, 윤지영, 장서영 3명의 작가로 이루어진 프로젝트팀 ‘아크로바틱 코스모스’의 첫 전시. 전시를 보며 공동의 움직임이 하나의 전시를 수행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각 작업의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작업들이 경계지어 있다기보다는 3명의 작가가 만들어낸 하나의 전시로서 유연하게 흐르는 느낌이 좋았다. 올해의 물음표를 꼽아보자는 말에 바로 이 전시를 떠올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더 구체적인 이유를 읊기가 어렵다.

<초월적 접근의 압도적인 기억들> (페리지 갤러리)

지금에 와서야 작업을 떠올리자니 희미하고 아주 멀리 있는 뭉게구름처럼 느껴지는 구동희 작가의 <초월적 접근의 압도적인 기억들>은 등장인물들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지만 다소 모호한, 계속되는 물렁한 상황만을 보여주는데, 영상을 보고 난 이후엔 나의 시공간도 물렁해지는 것 같았다.

<미니멀리즘이 남긴 것, 그 너머> (아뜰리에 에르메스)

물음표에는 궁금증의 의미도 있으나 당황스러움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면 또다른 물음표로 이 전시를 꼽고 싶다. 푹신한 의자에 걸터앉아 영상을 보다가 잠깐 잠들었는데, 좀비가 등장하자 잠에서 깼고 곧바로 각성 상태를 유지했다. 스테이트먼트를 보고 작업에 대한 궁금증은 해결되었으나 ‘전시장’에서 ‘잠이 들었다가’ ‘좀비’(비록 실제가 아닌 스크린 속 좀비라 할지라도)를 봤다는 3중의 당혹감은 여운이 오래 남는다.

<미니멀리즘이 남긴 것, 그 너머>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경

6. 놓쳐서 아쉬웠던 전시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 (세실극장)

짧은 기간에 다수의 기획자와 상당히 다수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이 다층적인 전시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했으나 결국 가지 못했다. 전시기간이 일주일 남짓한 전시는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운 것 같다.

<VIEWERs> (보안스테이)

책 출간 기념을 겸한, 시간과 인원을 제한한 유료 예약제 전시라는 점에서 궁금했으나 결국 가지 못했다.

<김효재: 디폴트> (원룸)

전시장 운영 시간을 면밀하게 체크하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가끔 방심할 때가 있다. 전시장 앞까지 갔으나 운영시간을 착각해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문에 부착된 이미지와 셀피를 찍고 가던 길을 갔다. 원룸을 오르내리는 계단은 언제나 힘들지만 그날따라 더욱 숨이 가빴다..

<김효재: 디폴트> (원룸) 굳게 닫힌 문 헥헥

7. 2018년의 OOO

올해의 밀도: <문명>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올해의 거울: <Surflatpictor> (P21), 김동희 '볼륨: 타입 1,2’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아트선재센터), <김중업 다이얼로그>(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올해의 추운 전시: <호버링> (2/W)

올해의 발이 시려운 전시: <환상벨트> (돈의문 박물관 마을)

올해의 더운 전시:<As Small As It Works> (써머 홀’18)

올해의 비주얼 전시: <몸소> (우란문화재단), <Cold Mood>(취미가) <죄의 정원>(엘리펀트 스페이스)

올해의 케이터링: 아라홈그라운드의 <죄의 정원> 케이터링 (엘리펀트 스페이스)

올해의 빗면: <몸소> (우란문화재단), <양말이피티> (취미가)

올해도 나를 잠들게 한 영상 작품 앞의 의자(소파): 요나스 메카스 <찰나, 힐긋, 돌아보다>(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릴리 레이노-드와 <미니멀리즘이 남긴 것, 그 너머> (아뜰리에 에르메스)

<몸소> (우란문화재단)

<Surflatpictor> (P21) 거울

<죄의 정원>의 케이터링 by 아라홈그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