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전시 결산 - 이기원

👩🏻‍💻2018 전시 결산📊 - ✍️이기원

1. 가장 좋았던 개인전/작품

송민정 <Cold Mood (1000% Soft Print)>(취미가) / 차슬아<Ancient Soul++>(취미가) / 우한나<Swinging>(왕산로9길 24 삼육빌딩)

어떤 분위기 자체를 자신의 작업으로 선보여왔다는 맥락에서 이전의 작업들은 이 분위기가 작용하는 범위가 영상이 상영되는 스크린 안으로만 한정됐다면, 이번 전시 <Cold Mood (1000% Soft Print)>에서는 이를 전시장 전체로 확장시키고, 관람객 개개인에게 주어진 태블릿과 이어폰을 통해 영상을 상영하면서 관람객이 작가가 제시한 분위기에 훨씬 더 몰입할 수 있게 유도했다. 특히 영상을 통해 관객의 동선과 이동하는 타이밍까지 제시하면서 단순히 어떤 영상을 시청하는 2차원의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분위기의 공간과 연결되면서, 전시 관람의 경험에 공간과 시간의 축을 추가(음료를 구매했다면 미각적 경험까지 더해진다)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전시라는 보여주기 방식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제시한다는 맥락은 차슬아의 개인전에서도 두드러졌는데, <Ancient Soul++> 역시 특정한 상황을 상정하고 관람객이 작품을 직접 만져보고 들어볼 수 있게 하면서 독특한 경험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바꿔말하면 두 전시는 모두  ‘전시 전경 사진’으로 간접경험되지 않는 전시이기도 하다. 이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한나의 <Swinging> 역시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전시장을 빼곡히 채운 작품들 사이를 거닐며 어쩔 수 없이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작품을 살펴보게 되는 경험이 흥미로웠다.

왼쪽부터) 송민정 / 차슬아 /우한나

김천수 <Low-Pass, Low-Cut>(일우스페이스)

매체탐구의 맥락에서 사진 프로세스의 오류를 다루는 작업들은 드물지 않게 등장해왔지만, 이들은 대부분 아날로그 필름 사진술, 그러니까 카메라라는 장치나 암실 프로세스에서 이뤄지는 경우이거나 (아날로그/디지털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진의 재현, 기록성에 대한 연구가 대다수였다. 김천수는 디지털 사진, 그 중에서도 디지털 사진에서의 오류/오작동에 관심을 둔다. 그러니까 아날로그 필름 사진술에 기반한 광학/화학적인 접근보다는 전자적인 데이터/기술로서의 디지털 사진/카메라의 작동방식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도출해낸다. 전시에서 선보인 두 작업 <Low-Pass>, <Low-Cut>은 매체탐구의 차원에서 유의미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조형적으로도 인상적이었다.

김천수 <Low-Pass, Low-Cut> 전시전경

정희승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 in 2018 광주비엔날레

2018년 한 해동안 본 작업 중 가장 아름다웠다. 특히 이번 작업의 소재가 된 옛 국군광주병원은 전시장으로 기능하기도 하고, 정희승 외에도 염중호, 백승우 역시 신작의 소재로 활용했던 곳이었기 때문에, 직접 그 폐허를 둘러본 경험과 다른 작가들이 그곳을 촬영한 결과물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정희승의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따>는 폐허라는 (아주 강력하고)진부한 피사체를 지금까지의 폐허 이미지와는 ‘다르게 보이도록’ 혹은 ‘자신의 작업으로 보이도록’ 선보였다. 동일한 혹은 유사한 피사체를 찍은 사진들 사이에서 자신의 작업을 구분할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것은 여전히 좋은 작업을 걸러내는 유효한 기준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희승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 2018 광주비엔날레 <한시적 추동>(기획 김성우) 전시전경

2. 기획 자체가 좋았던 전시

As Small As Work It (박정우 기획, 써머 홀'18)

전시에서 제시하는 규칙-가능한 한 작은 작업을 선보일 것-이 어떤 제한사항으로 작용하면서도 개별 작업에 너무 개입하지는 않게 작동하면서 기획과 작품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전시였다. 특히 ‘가능한 한 작은 작업’이라는 규칙이 단순히 작품들을 정렬하는 기준에 머물기 보다는 하나의 새로운 수식처럼, 이로인해 새로운 결과값이 도출됐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참여 작가들의 라인업 역시 좋았는데, 모두 회화 작업을 하면서도 접근방식이나 기법, 주제의식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오히려 기획자가 제시한 규칙이 효과적으로 드러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자세한 내용은 <As Small As Work It> 리뷰 참고

<As Small As Work It> 중 임창곤 설치 전경

스테이트-포인트 (노해나 기획, 산수문화)

규모는 크지 않은 기획전이었지만, 명확한 기획의도와 이에 부합하는 작가/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어떤 추억과 향수로서의 90년대가 아닌, 집단에서 개인으로 사회적인 주체가 옮겨가는 시기로서의 90년대를 세 작가(강신대, 김익현, 최윤)의 작품을 통해 짚으면서 이른바 ‘K-스러운’ 것들의 단면을 보여줬다. 개별 작가의 작품들과 기획의도 사이에 균형점을 잘 맞춘 느낌.

<Walking, Jumping, Speaking, Writing (…)>(김익현 기획, SeMA창고)

어떤 장면이나 순간을 보여주는 창구로서의 사진보다는 그 자체로 기능하는 하나의 매체이거나, 사진을 통해 기억이 촉발기도 하고, 광학기기를 거치지 않은 이미지로 영역을 확장시키고, 사진 이미지를 하나의 오브제로 다루는 등 다양한 작동방식을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여전히 많은 매체탐구형 사진작업들이 ‘사진’ 내부에만 머문다는 점에서, 기존의 매체탐구 바깥 영역에서 고민하는 작가들을 소개하고 화두를 던진다는 차원에서 기획이 돋보였던 전시.

<Walking, Jumping, Speaking, Writing (…)>전시전경

<박이소 : 기록과 기억>(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공간 배치가 무척 흥미로웠는데, 과천관의 길쭉한 전시장을 하나의 타임라인처럼 구성하면서 회고전에 최적화된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캡션이나 월텍스트도 박이소 작가 스타일로 메모지에 테이프로 무심하게 붙인 듯한 느낌을 살려 전시의 전체적인 룩을 세심하게 조성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3. 올해의 발견

박동균

2017년 한예종 졸업 전시를 통해 처음 알게됐지만, <2017 미래작가상 수상자전>(캐논갤러리), <물질몽타쥬>(갤러리175), <더 스크랩>(문화역서울 284), <RIP>(디스위켄드룸)등  한 해동안 여러 전시에 참여했다. 3D 툴을 자유롭게 다루면서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이를 홈페이지를 통해 분류, 정렬하는 방식이 흥미로운데, 덕분에 홈페이지에 올라온 작업들에 비해 전시에서 본인의 작업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못한 느낌이 있다. 앞으로 적절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전시로도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작업에 관한 내용은 보스토크 9호 - 뉴-플레이어 리스트 II에 실린 <데이터베이스 생산-가공-정렬> 참고

박동균 <미래작가상 수상자전> 설치 전경

이나하

개인전 <Resize>(원룸)과 <As Small As Work It>에서 선보인 ‘리사이즈 회화’ 연작은 작업을 설계/구축해나가는 과정이 특히 흥미로웠다. 자세한 내용은 <As Small As Work It> 리뷰 참고

이나하 <RESIZE> 전시전경

정희민

처음 금호미술관에서 작업을 보고는, 디테일도 디테일인데 작품 수도 많아서 무척 놀랐다. 지금까지 액정화면과 스크린에 기반한 이미지들을 물리적인 회화로 내보내기(export) 시키는 작업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마치 스크린샷을 캔버스로 붙여넣기 한 것 같은 감각과 표현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이외에도 <올오버>(하이트컬렉션), <Subscale>(갤러리 룩스), <Gray Navy Black>(주홍콩 한국문화원), <이브>(왕산로9길 24 삼육빌딩) 등 여러 전시에 참여했는데, 정말이지 2018년 한 해 동안 말 그대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에 비해 작가 인터뷰나 작가론 등 텍스트가 많이 생산되지 못한 것이 조금 의아할 정도.

<2018 금호 영 아티스트> 전시 중 정희민 설치전경

4. 올해 인상깊었던 토크 / 전시연계 행사 / 프로젝트

EYER

전시보다는 출판물이 좀 더 인상적이었는데, 일반적인 미술관련 출판물들은 필자 또는 편집자가 다룰 작가/작품을 고르는 방식이었다면, EYER의 <VIEWERs>는 이와 반대의 방식으로 글들이 꾸려졌다는 점이었다. 작품들이 그저 글의 참고자료가 되는 도판도 아니면서, 온전히 작품을 보여주는데 치중하는 것도 아닌, 그래서 크게는 잡지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전시 도록도, 작품집도 아닌 묘한 위치에 놓인다. 글 역시 흔히 봐온 작가론이나 인터뷰 형식이 아닌 각각의 작가가 평소 품고있던 고민이나 문제의식들을 필자들을 통해 텍스트로 생산하면서 조금 다른 결을 지닌 글들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글들이 ‘청탁'의 결과물이기보다는 텍스트 형식의 ‘협업'처럼 느껴졌다.

One-Piece 프로젝트 (원룸)

매년 2~3명의 작가를 선정하고 여러 번의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초기 작업부터 현재작업까지 심도깊게 연구하는 프로젝트. 2018년에는 김수연, 손현선, 이수경 작가를 다뤘고, 각각 클리어 화일 3~4개 분량의 인터뷰로 정리돼 전시장에 비치됐다.이처럼  중견작가라는 지칭은 어색하지만, 그렇다고 아직도 신진이라고 불릴 순 없는 짧지 않은 경력을 가진 이들의 작업을 초기부터 최근까지 살펴보고 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단히 유의미한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One-Piece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된 자료들이 언젠가 출판물의 형태로 묶여 나올 수 있기를 고대한다.

Adocs (우르슬라 프레스)

올해 가장 중요한 등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신생공간’의 시기 이후에 전시 관련 정보와 자료들은 네오룩과 같은 기존의 플랫폼을 떠나 SNS를 기반으로 유통/공유되기 시작했는데, 일시적인 파급력에 비해 아카이빙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특히 무료배포되는 리플렛/도록 같은 경우는 당시에 구해두지 않으면 나중에는 도무지 구할 방법이 없고, 이는 특히 작품보다는 전시와 함께 생산된 텍스트에게 매우 취약했다. 이는 소규모로 제작된 독립 출판물이나 기금을 받아 소량 제작된 도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맥락에서 시각예술 관련 E-Book 유통 플랫폼인 Adocs의 등장은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 올해의 물음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

2018년에 가장 실망스러웠던 공간을 꼽는다면 단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이다. 기존 연례 기획전들이 폐지되고 그 자리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면서 유독 몸집만 크고, 재미없는 전시만 이어졌다. 오히려 같은 시기 북서울 시립미술관에서는 유의미한 전시가 꽤 열렸던 것을 생각하면(덕분에 전시를 보러다닌 이래 처음으로 서소문보다 북서울을 자주 갔던 한 해였다), 단순히 관장 교체의 여파라고 치부하기도 애매한 것 같다. 그나마 서소문관에서 흥미로웠던 전시들은 <IN_D_EX>, 오종의 <주고받는 모서리> 그리고 <미디어시티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최하늘의 <홈비디오 #43, 미디어시티 나들이(2056, 9)> 정도였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들이었다.

<문명 :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사진러 입장에서 그간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전시라 기대가 무척 컸고, 실제로 전시를 보면서 그런 기대가 충족되기도 했지만, 너무 무리하게 많은 작품들을 전시장에 우겨넣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원형 전시장의 디스플레이는 인스타그램용 인증샷을 남기기에는 훌륭한 구성이었지만, 개별 작품의 캡션을 일일히 확인하기도 불편하고, 관람객이 어느 작품을 봤고 못 봤는지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선 없이 배치를 해둬서 관람 자체가 피곤했다. 전시 내용에 있어서도 <인간가족>전의 현대판을 만드려고 했던 것인지 전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지만, <인간가족>전이 그랬듯 서구의 관점으로만 정리한 것으로 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굳이 이런 전시를 기획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 전시.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 (세실극장)

전시보다는 스크리닝 행사에 가까웠는데, 스크리닝 행사라도 보더라도 참여작품들을 모두 봤던 관객이 아니고서야 이를 통해 개별 파트의 큐레이터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고, 개별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과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라는 행사/전시를 관람하는 것이 서로 미끄러질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실험적인 기획이라고는 할 수 있겠으나 이것이 누구를/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에 있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이 전시의 구조 안에서 관객은 존재했는가? 혹은 관객은 어떤 존재로 상정됐는가?

6. 놓쳐서 아쉬웠던 전시

<프레임 이후의 프레임>(대구미술관) / 최하늘 <카페 콘탁트호프>(산수문화) / <EVE>(왕산로9길 24 삼육빌딩) / <세 번 접었다 펼친 모양>(브레가 아티스트 스페이스) / <동시적 순간>(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물론 놓친 전시야 많지만, 위에 나열한 전시들의 공통점이라면 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못갔다거나 특별히 좋아 보였는데 못 봤다기 보다는 ‘가서 확인해 봐야 하는데 못 봐서 아쉬운 전시’라 할 수 있다. 어떤 전시는 전시전경 이미지나 자료만 봐도 얼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보여서 “안 가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하지만 또 어떤 전시는 오히려 전시자료를 통해 관심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7. 2018년의 OOO

2018년의 흥미로운 도록 / 작품집 / 리플렛 : <Sorry Not Sorry> 도록, <Float 9 : EH>, <IN_D_EX> 도록, 부산비엔날레 가이드북&리플렛, 엄유정 <Baked Shapes>, 이은새 드로잉북

2018년의 인상깊은 전시 그래픽 디자인 : <W쇼>, <유령팔>, 최문경 <구텐베르크 버블>, E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