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전시 결산 - 조은채

👩🏻‍💻2018 전시 결산📊 - ✍️조은채

1. 가장 좋았던 개인전

박민하 ‘Cosmic Kaleidoscope’<우리는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두산갤러리)

이은새 <밤의 괴물들>(대안공간 루프)

줄리앙 프레비유 <핀치-투-줌>(아트선재센터)

박민하 작가의 ‘Cosmic Kaleidoscope’은 <우리는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두산갤러리)라는 전시 안에 있는 비밀 극장(?) 같은 느낌이 좋았다. 바깥에 포스터와 상영 시간이 적혀있고, 커튼을 열고 안으로 입장하는 구조. 괜히 유랑극단 공연 보러 입장하는 과거의 관객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의자도 극장 의자 같아서 오랜만에 영상을 정말 ‘관람’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미술관에서의 다른 많은 영상 작업이 이제 어떤 의미에서는 관람/몰입보다는 머물다 가는 방식의 ‘보기’가 더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는 점에서 오랜만이었다.)  ‘Cosmic Kaleidoscope’는 왠지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는데,

그 향수의 대상이 우주, 빛, 별, 화성, 혹은 영화와 같이 한 번도 닿은 적이 없었던 무언가여서 흥미로웠다. 존재하지 않았던 기억인데도 왜 그리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걸까? 우리가 지금 보는 어떤 별은 이미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에 수명을 다했는데도 여전히 빛나는 것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을까? 디즈니 월드에서 정해진 경로를 회전하는 놀이기구의 이미지는, 우주에서는 행성이 궤도를 도는 이미지와 겹쳐지고, 영화 탄생 이전에 그림에서 움직임을 만들어냈던 최초의 도구들도 떠오른다. 이 작업 속에서 우주(혹은 빛)와 영화가 부드럽게 맞물리는 느낌. 지극히 미래적인 이미지를 보여줄 때도 과거를 연상하게 하고,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영화를 상상하게 만든다. "지구의 대기권 밖에서 빛과 음파가 다르게 재생된다. 이는 다른 영화를 생성한다."

최근 어딘가에서 ‘입면 환각’이라는 말을 듣고 이은새 작가의 <밤의 괴물들>이 다시 떠올랐다. 자려고 누우면 아주 가끔 귀에서 여러 사람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한참 동안 들려오다가 갑자기 확 잠들 때가 있었다. 입면 환각은 “각성 상태로 누워서 마비된 채로 꿈을 꾸는 현상”이라고 하던데, 잠이 시작될 때쯤 겪는 환청이나 환각으로 심각한 정도가 아니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전시장에서는 별다른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밤의 괴물들>을 다시 생각하면 웅성거리는 목소리들을 들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계단에서 지하층을 내려다봤을 때, 한 층을 빼곡하게 채우던 캔버스 속 인물들이 내는 온갖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 공연한 착각. 입면 환각처럼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상상일 뿐이겠지만 꽤 생생해서 괜히 헷갈리는 기분. 머리로 무언가를 이해하기 전에 몸으로 먼저 겪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좌) 이은새, '눈싸움', oil on canvas, 181.8x227.3cm, 2018 

우) 박민하, <Cosmetic Kaleidoscope>, 2018 DCP, 스테레오 사운드, 17분

줄리앙 프레비유의 <핀치-투-줌>은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 가장 글로 풀어보고 싶은 전시이기도 했다. 사실 와우산타이핑클럽에 리뷰를 올리려고 혼자 마음먹었던 전시였던 만큼 더 열심히 봤는데 논문에 치여서 이래저래 진척이 없다.. 무의식에 따른 것이라고 여겼던 몸의 움직임이 어떻게 기술에 의해 통제될 수 있는지, 사용자가 게임의 탈을 쓴 공짜 노동을 왜 기꺼이 신나서 하게 되는지…!  대부분의 영상 작업은 줄리앙 프레비유의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감상할 수 있다. 영상 작업이 가장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시선의 문집’(2015-2018)’이라는 작업도 기억에 남는다. 여섯 명의 학생이 시선을 추적해서 드로잉으로 가시화한 이 작업은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인터넷을 읽는 사용자의 시선은 “알고리즘적인 응시(gaze)”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던 보리스 그로이스의 언급을 떠올리게 만든다. 전시장 안의 작업들과는 꽤 분위기가 달랐던 초기작 ‘구르기’(1998)가 전시장 밖 입구 근처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던 것도 재미있었다.

줄리앙 프레비유, <핀치-투-줌> 전시 전경

2. 기획 자체가 좋았던 전시

송민정 <COLD MOOD (1000% soft print)>(취미가)

<유령팔>(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더블 네거티브: 화이트 큐브에서 넷플릭스까지>(아르코미술관, 이하 <더블 네거티브>)

송민정 작가의 개인전 같은 경우에는 거의 마지막 날 방문해서인지 3시간이나 기다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야 더 좋다는 소리에 일부러 정보를 하나도 찾아보지 않고 가서 기다리는 내내 너무 궁금했다. 전시를 보고 나니 기다려야만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고, 3시간 정도면 꽤 기다릴 만 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무드’를 전시로 풀어내면 이렇겠구나, 그렇다면 이 전시는 결국 이 분위기를 체험하는 전시일까? 아니면 전시가 광고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만큼, 홍보되고 있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도리어 가장 적절한 관람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 전시를 어떻게 관람해야 할까? 내가 간 날에는 이미 음료와 디저트 모두 매진되어서 아무것도 구매할 수 없었다. 나는 음료(소다)가 너무 마시고 싶었는데  왠지 그 순간 마시는 소다는 밖에서 먹는 것과 완전히 다를 것 같았다. 그런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광고의 목표라고 생각한다면, <COLD MOOD (1000% soft print)>은 완벽하게 성공한 광고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소다(그때 그 소다)가 마치 나를 위해서 준비된 것 같고 지금 구하지 못하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느낌. 미래의 광고가 지향하는 바(더 타겟화되고 더 매력적이고)를 전시로 선취한 것 같았다.

<유령팔>과 <더블 네거티브>는 여러모로 재미있었지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아직 더 필요한 것 같다. 아쉽지만 지금은 두 전시의 제목을 언급하는 것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여담이지만 <유령팔>의 경우에는 북서울미술관의 어린이 관객들이 이 전시를 어떻게 느꼈을지가 무척 궁금했다.

  

3. 2018년의 발견

김아영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

에이독스 Adocs

호랑이의 도약

2018년과 2019년 사이에 출간된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은 일민미술관에서 열렸던 김아영 작가의 전시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 연계 출판물이다. 김아영 작가, 철학자 레자 네가레스타니, 큐레이터 셀린 풀랑, 유운성 평론가의 글 모두 흥미롭고 중간중간 삽입된 이미지와 도표 등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책 자체도 너무 예쁘다. 에이독스의 경우 덕분에 구하기 어려웠지만 읽고 싶었던 글과 도록, 책들을 E-book으로 접할 기회가 생겨서 좋았다. 올라와 있는 출판물들의 표지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호랑이의 도약은 2017년부터 사이트가 열려있었던 것 같은데 2018~2019년 들어서 텍스트가 많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 같다. 다음에는 무슨 글이 올라올지 무척 기대된다.

김아영,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

4. 올해 인상깊었던 토크 / 전시연계 행사 / 프로젝트

<더블 네거티브>(아르코미술관) 클로징토크- 작가와의 대화: fldjf 스튜디오 박보마, 홍진훤

오준호, ‘첨단과 전위의 상상적 봉합: 유현목(1925–2009)와 최일수(1924–1995)의 시네포엠(1964-1966)’(아트선재센터·무빙이미지포럼 공동 주최, <필름 큐레이팅의 역사와 실천>)

<더블 네거티브>의 작가와의 대화의 경우에는, 아르코미술관에서의 전시 외에도 인스타그램이나 웹사이트와 같은 다른 축에서도 작동하던 <더블 네거티브>를 더 잘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전시 클로징 후 전시장에서 진행되어서인지 토크를 통해 전시가 완결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토크 진행 중에도 전시 때와 마찬가지로 중간에 조명이 꺼진다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다. 그런데도 막상 조명이 꺼지니까 알고 있음에도 당황하게 되는 지점도 재미있었다.

오준호 선생님의 강연에서 “시네포엠에서 행의 길이가 쇼트의 크기(어쩌면 쇼트의 ‘길이-지속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기억에 의존하다보니...)”라는 표현을 듣고, 스크린에 떠 있던 시의 구절을 읽는데 순간 그 장면이 머릿속에 영화처럼 그려졌다.

5. 올해의 물음표

압축과 팽창의 ‘Charlie Oscar/Echo X-ray’(<유령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이하 <CO/EX>)

홍진훤의 Old bridge v1.02 (http://double-negative.xyz/) <더블 네거티브>(아르코미술관) 연계 웹사이트

나에게는 <CO/EX>가 2018년의 가장 큰 물음표였던 것 같다. 사실 <계간 시청각 2호>에 기고했던 글도 이 작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에서 시작했다. 보자마자 많은 것들을 연상시키지만 동시에 그 무엇의 범주에도 시원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좋았다.

홍진훤 작가의 [DNWN] 웹사이트에서는 문장을 클릭하거나 드래그하려고 하면 갑자기 모든 문장이 사라져버린다. 문장을 절대 긁어갈 수 없도록 만들어진 전시 웹사이트. 좋았던 작업에 넣어야 할 것도 같은데 그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2018년의 물음표로!

 

압축과 팽창, '찰리 오스카에코 엑스레이 사무실 공간', “김과 “안”이 기존 실측도와 현장 실측을 통해 구성한 CO/EX 사무실, 2018

홍진훤, 'Old bridge v1.02' (http://double-negative.xyz/) <더블 네거티브>(아르코미술관) 연계 웹사이트

6. 놓쳐서 아쉬웠던 전시

2018년에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거의 모든 전시가 무척 흥미로웠는데, 결국 일 년 동안 백남준아트센터를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그 외에도 놓친 전시가 너무 많았던 데다가 각기 다른 마음으로 아쉬워서... 설명을 덧붙이기가 어렵다.

김효재 <Default 디폴트>(원룸) → 여는 시간을 잘못 알아서 갔는데도 못 봤다...

유영진 <캄브리아기 대폭발>(인사미술공간), <Take me somewhere nice>(위켄드)

최하늘 <카페 콘탁트호프> & 문주혜 <셔플 더 덱>(산수문화)

7. 2018년의 OOO

2018년의 제목: 서울사진축제 특별전 <Walking, Jumping, Speaking, Writing. 境界を、ソウルを、世界を、次元を. 경계를, 시간을, 세계를, 차원을. 신체는, 링크는, 언어는, 형태는.>(SeMA 창고)

2018년의 리뷰 원고: 곽영빈 선생님의 박경진 <현장 Site> 리뷰(월간미술 1월호, 133p.)

이 글을 읽지 못했다면 <현장 Site>를 “오독하는 가장 게으른 지름길”을 갈 뻔했다.

2018년의 잔상: 강호연 <Planet 72.82㎡>(인사미술공간)

‘지구의 멸망, 그 이후’를 주제로 펼쳐진 <Planet 72.82㎡>에서 인사미술공간 자체가 멸망한 지구의 단면 같았다. 1층의 사운드, 2층의 쨍하게 파란 하늘, 3층의 습기가 뚜렷한 잔상으로 남았다.

2018년의 여름: <비디오쇼룸>(소쇼룸), <스크리닝 샷->(난지한강공원, 상영회)

<비디오쇼룸>은 하필이면 냉방 시설이 고장 났을 때 가서 더위를 한껏 느낄 수 있었고, <스크리닝 샷->에서는 모기에 잔뜩 물려서 2018년 여름의 흔적을 아주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었다.

2018년의 오프닝: <VIEWERs>

왠지 오프닝 날 출간기념회 같은 느낌이 제일 많이 났을 것 같다. 유료/예약제 전시였지만 오프닝 때는 예약 없이 무료로 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 방식 자체가 흥미로워서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과 낮에 전시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는 말을 듣고 낮에는 어떨까 궁금했다. 다시 전시를 보러오고 싶다고 가장 크게 느꼈던 오프닝!!

2018년의 결산 중의 발견

유지영 작가의 개인전 <Spilled Water>를 흥미롭게 봤는데, 우연히 자료를 정리하다가 2017년 <더 스크랩>에서 내가 유지영 작가의 작품을 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 번외 : 미술관에서의 식사

2018년의 커피: <커피사회>(문화역서울 284)

2018년의 미술관에서의 식사: 아트선재센터·무빙이미지포럼 공동 주최의 <필름 큐레이팅의 역사와 실천> 기간 동안 아트선재센터의 한옥에서 열렸던 ‘심플 밀 카페’(아트선재센터x홈그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