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전시 결산 - 콘노 유키

👩🏻‍💻2018 전시 결산📊 - ✍️콘노 유키

1. 가장 좋았던 개인전

이은새 <밤의 괴물들>(대안공간 루프) / 김민희 <오키나와 판타지>(합정지구)

이미정 <The Gold Terrace>(아트딜라이트) / 유지영 <Spilled Water>(레인보우큐브갤러리)

공통적으로 페인팅인데 각각 작가의 의도나 지향점이 뚜렷해서 기억에 더 남은 것 같다. 이은새 작가와 김민희 작가는 젠더와 연관되는 주제를 공통적으로 보여주는데, 전자의 경우는 (장면으로 직접 다루기도 하는) ‘눈덩이를 세게 맞은 듯한’ 인상을 주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평평한 대지에서 서서히 ‘융기’(기획자는 ‘발사’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지만)하며 상대적으로 잠잠한 표현 속에 튀어오른 힘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전자는 “괴물들은 낮에는 과연 괴물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떠올릴 수 있었고, 밤이라는 상황설정이 어쩌면 (자연적이고 결국 녹아버리는) 눈덩이를 가지고 하는 공격을, 더 나아가 작품의 주제와 표현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한편 김민희 작가의 경우는 <오키나와 판타지> 중의 <은밀한 풍경>이  시각적으로 끌렸다. 이는 조지아 오키프가 그린 황소나 양의 두개골과 다른 방식으로, 속이 빈 (비)존재로서 대낮에 ‘매달려 전시된’ 장면이라 할 수 있는데, 색깔의 차이 뿐만 아니라 배경화되지 않은 채  튀어나온다. 두 작가의 상황설정은 낮과 밤이며 대조적이지만, 각 장면에 맞는 주제와 시각적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좌) 김민희, '은밀한 풍경' 2017 (사진: 작가 홈페이지에서)

(우) 이은새, '밤의 괴물들 - 눈싸움', 2018 (사진: 대안공간 루프 홈페이지에서)

유지영 작가와 이미정 작가의 전시는 각각 지지체와 페인팅의 연결지점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이미정 작가의 작업을 많이 볼 기회가 유독 많았던 한 해였는데, 마지막에 열린 <The Golden Terrace>는 그전 <인덱스>(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몸몸몸>(인스턴트 루프), 그리고 <soshoroom: the storage-room>(소쇼룸)에서 열린 전시보다 페인팅을 다루는 일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더 느껴졌다. 물감이 지지체를 덮어 다른 매체를 재현할 때, 가구장식처럼 발휘되는 기능성은 꽃무늬가 그려진 책상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여기(벽|벽지: 페인팅과 오브제 사이, 혹은 오브제 위에서, 이미정 <The Gold Terra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지영 작가 또한 오브제와 페인팅 사이에서 작업을 선보인 바 있는데, 이미정 작가가 페인팅의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측면에서 주목했다면, 유지영 작가의 경우는 ‘세우기’를 통해 상(像)의 지지체―그러니까 페인팅의 성격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는―로서 보여주고 있다. 두 작가의 전시에서 지지체와 페인팅의 관계는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순서를 따지는 것과 다른, 닭이 있기에 알을 낳고 알이 존재하려면 닭의 존재가 앞서는, 일종의 공모관계로 나타난다.

(좌) 이미정 <The Gold Terrace> 전시풍경

(우) 유지영 'Plate XIXX' (작가 홈페이지에서)

2. 기획 자체가 좋았던 전시

<팬텀 서비스>(정금형, 돈선필, 송민정, 손주영)(취미가 기획)

강동주 <창문에서>(취미가)

서울사진축제 특별전 <Walking, Jumping, Speaking, Writing. 境界を、ソウルを、世界を、次元を. 경계를, 시간을, 세계를, 차원을. 신체는, 링크는, 언어는, 형태는.>(김익현 기획, SeMA 창고)

아무래도 작년에 계속적으로 생각했던 개인적 관심사 때문에 이 사례들을 고른 것 같다. 시청각 전시 준비를 하면서 과거와 미래가 현재시점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시공간 축이 어떻게 섞이고 미묘하게 연결되는지에 관련해서 여러 가지 텍스트도 읽고 있던 참에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그 방향으로 향했다. 정금형, 돈선필, 송민정, 손주영 네 작가의 전시와 강동주 작가의 개인전은 모두 취미가 (정금형 작가의 공연만 문래예술공장에서) 전시공간에서 열렸는데, 과거의 작품영상을 작가가 공연의 형식으로 소개하거나 (정금형 <비디오투어>) 캐릭터의 레벨-업과 플레이어의 시간성(돈선필 <METAL EXP : 외톨이의 움직이는 시간>), 보는/본 것-기록을 다시 옮기는 이행과정(강동주<창문에서>), 보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향수나 음식과 같이 사라지는 경험으로 남(지 않)거나(송민정 <COLD MOOD (1000% soft point)>), 영화의 연출된 장면을 소재로 다루면서 흐르는 것과 고이는 것을 보여주면서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시차(視差/時差)를 관람객의 현재 시점을 통해 어떻게 보일지, 각각의 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던 바는 내 관심사와 연결돼서 흥미롭게 봤다. 

(좌) 강동주 <창문에서> (사진: 취미가 홈페이지에서)

(우) 돈선필, <외톨이의 움직이는 시간> (사진: 취미가 홈페이지에서)

좀 더 공간적인 이야기(물론 시공간을 완벽하게 분리시킬 수는 없지만)를 하자면 서울사진축제 특별전에서 기획자이자 작가인 김익현이 작은 큰 전시장 안에 작은 전시장을 만들었던 부분이다. 순서는 앞뒤가 바뀔 수도 있지만, 전체 전시를 다 보고 나서 아카이빙 룸처럼 구성된 작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차이는 서문에 나오듯 ‘SF이야기’가 아닌, 좀 더 넓은 의미인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작은 공간의 밀도와 전체 전시의 밀도 차이는 어느 한쪽이 더 많은 걸 차지해서 좋다는 이야기로 가지 않고 다른 차원을 유지하면서 미묘하게 관계가 맺어진다. 특히 평면 이미지와 입체물이 투명한 볼 안에 담겨졌지만 매끈하게 인식되는 THE COPY TRAVELERS의 (우연히 지구를 닮은) 입체작업과 이민지 작가가 여행지를 좌표값을 통해 평면으로 옮긴 작업은 마치 공간성을 가진 세계의 응축과 이완처럼 보였다. 

(좌) 이민지 전시풍경 (사진: 김익현)

(우) THE COPY TRAVELERS 전시풍경

3. 2018년의 발견

이가람 <Spring Calling Ceremony>(탈영역우정국)

유지영 <Spilled Water>(레인보우큐브갤러리)

유정민 <내가 잘할게>(공간 가변크기)

김다정 <물질몽타주>(갤러리175), <Plural Nights>(2/W)

정유진 <물질몽타주>(갤러리175), <애프터 10.12>(시청각)

우선 작업을 그때까지 본 적이 없던 작가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작가는 이가람, 유지영, 그리고 유정민 세 작가이다. 이가람 작가는 탈영역 우정국에서 열린 <Spring Calling Ceremony>에서 빛이나 물을 쓰면서 상황연출하는 분위기가 흥미로웠다. 상황연출과 관련해서 유정민 작가의 개인전 <내가 잘할게>(공간 가변크기) 또한 흥미로웠는데, 전시장 내의 작은 오브제들과 그들이 배치된 지지체의 성격이 서로 비슷하다고 느꼈고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전 작업과의 연결지점을 알 수 있었다(링크). 또 지지체의 성격과 연관시켜 유지영 작가의 작업도 관심 있게 봤다. 레인보우큐브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Spilled Water>에서 작가는 새나 알이 아니라 새와 알이 그려진 한 페이지를 그리면서 지지체의 형식으로 페인팅을 자립시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1.에서 언급한 내용도 참조 바랍니다.)

(좌) 유정민 <내가 잘할게> (사진: 작가 제공)

(우) 이가람 <Spring Calling Ceremony>(사진: 작가 홈페이지에서)

그리고 2017년 한예종 졸전이 (이제야) 출발점이 된 김다정 작가와 정유진 작가. 김다정 작가는 졸전에서 운동선수나 아이돌을 그린 <점프-샷> 시리즈를 흥미롭게 봤다. 그런데 다음 해에 열린 갤러리175의 <물질몽타주>(박선호 기획)과 2/W에서 열린 <Plural Nights>의 두 단체전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선보이면서, 어떤 부분에 관심이 있고 페인팅 작업을 하는지 더 궁금해졌다. 정유진 작가도 졸전과 <물질몽타주> 기획에 참여했을 때의 작업을 보고 흥미롭게 생각하던 참에, 시청각 <3X3> 중 <애프터 10.12>에서 스기모토 켄스케 작가와 같이 전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설치의 규모도 그렇지만 가짜-가상과 현실 사이의 관계를 물질적으로 다루는 부분에서 계속 시도를 하고 있는데, 시청각 전시에서 언어화하지 못한 부분을 언제 한 번 정리하고 싶다. 

(좌) 김다정 'Glancing Blow' (사진: 작가제공)

(우) 정유진 '인간백해무익가든' (사진: 작가제공)

4. 인상깊었던 토크 / 전시연계 행사 / 프로젝트

'비평 전야 批評 前夜/全野' 세미나 중 '영상비평은 왜 실패하는가' 방혜진(기획/진행), 곽영빈, 유운성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커뮤니티룸)

<ONE-PIECE>(ONEROOM)

<PACK 2018: 팅커벨의 여정>(공간사일삼)

꼽은 세 가지는 모두 작업에 대한 외연적인 조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다만 각 관점은 조금씩 다른데 작품의 생산, 작가의 진술 및 그 기록, 그리고 작업에 대한 평가 혹은 비평(하기)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작품의 생산과 관련되어 <PACK 2018>가 있는데, 여기서 작업은 제한된 공간에서 알맞는 방식으로 제작되어 진열된다. 다만 여기서 ‘제한’이 강조되는 것보다는 일종의 여정(부제인 ‘팅커벨의 여정’이 그렇듯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관람객이 마치 작은 요정이 되어 작품을 보는 것도 그렇지만, 작업의 제작과정과 창작시도의 틀로서 작동하는 점에서 작품제작에 들어가는 모색과정이나 작업 형태의 변화에서 여정이라는 말을 다시 풀어볼 수 있다. 물론 판매 플랫폼은 수요층의 문제와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이 제일 적합하지만, 그래도 창작자의 제작과정에 창작의도를 제공하는 점에서 일반적인 판매형태와 다르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어 그 부분이 흥미로웠다. 

(좌) ONE-PIECE (사진: ONEROOM 트위터 계정에서)

(우) PACK 2019 (사진: PACK 2019 트위터 계정에서)

ONEROOM에서 진행된 <ONE-PIECE>는 이수경 김수연 손현선 세 작가와 기획자가 나눈 이야기가 기록된 내용을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내용의 볼륨이 어마어마해서 가서 다는 못 읽었지만 전시장에 실제로 가지고 온 몇 개 작품과 함께 내용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보통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된 글은 과도한 야망이나 열정에 젖어들기 쉬운 경향이 있는데, 세 작가와 나눈 이야기들은 오히려 솔직하고 세부적인 이야기로 관람객에게 전달된다. 앞으로 이런 프로젝트 형식이 계속적으로 진행되었으면, 그리고 활성화했으면 좋겠다..

이 두 가지 사례가 작가(의 제작 및 유통방법, 에 대한 이야기)에 좀 더 기울어져 있다면, 유운성 선생님과 곽영빈 선생님을 섭외하여 창동레지던시에서 방혜진 선생님이 기획한 토크는 작품(을 보는 방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상작업을 주로 다루는 비평가 두 분이 김희천 작가의 '바벨'(2015)이나 옥인 콜렉티브의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2011), 그리고 임흥순 작가의 영상작업 등을 중심으로 작업을 분석하고 걸리는 미세한 포인트(‘이질감’)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제목에 명시된 ‘실패’의 낙인이 찍힌 ‘영상비평’을 출발점으로 해서, 퉁치기 쉬운 개념(어)나 단어에 묶어 작품을 보는 것과 달리,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하거나 지나갈 수 없는 부분에 주목하면서 파고드는 태도가 정말 존경스러웠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내가 어떻게 작업을 ‘봐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작은 코도 안 다치게”…)

5. 2018년의 물음표

정금형 <비디오투어>(취미가 기획,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

송민정 <Caroline, Drift train>(퍼폼 2018, 일민미술관)

압축과 팽창 'Charlie Oscar/Echo X-ray'(<유령팔>, 북서울미술관)

<더 스크랩 2018>(문화역서울284)

홍진훤 <랜덤 포레스트>(아트스페이스 풀)

이다은 'Image Hunting'(갤러리175, <뉴스, 리플리에게>, 북서울미술관)

여기서 언급할 사례들을 언어화하려는 계기가 “???(물음표)”에서 시작된 전시 혹은 작업들이다. 그 말은 사실 전시를 보는 동안 혹은 보고 나서 “이게 뭘까?”하는 의문이 먼저 떠올랐다는 (말그대로의) 뜻인데 하나는 “내가 무엇을 봤는지” 모르는 두 공연과 관련해서, 다른 하나는 “이미지들을 어떻게 봐야/취급해야 할지” 모르는 작업 및 전시에 관련된 내용이다. 

2018년 초와 말에 본 두 공연은 내가 무엇을 봤는지 그 자리에서 당장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정금형 작가의 <비디오투어>는 처음에 예상했던 바를 벗어났다. 관람객은 담담한 어조로 설명을 들으면서 과거의 작품영상을 보게 되는데, 예상했던 기계의 동적인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작업은 말을 통해 비상시 탈출방식이나 설명을 통해 관객들을 최면적으로 전율시킨다. 퍼폼에서 송민정 작가가 선보인 <Caroline, Drift train>는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관람객의 정적인 상태가 작업에 설정된다. 열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을 모티프로 공연은 진행되는데 관람객은 핸드폰에 들어오는 문자 메시지를 보면서 상황을 확인하고, 링크로 전달되는 영상을 보면서 플랫폼 밖의 시공간을 (마치 우리가 목적지로 실제로 가는 상황처럼) 경험한다. <비디오투어>가 관람객에게 ‘이전’ 시간축을 경험하게 하는 것과 달리, 이 작업의 경우는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미래’에 갈 ‘저 공간’을 실시간‘처럼’ 경험하게 만든다. ‘플랫폼 업무 종료’의 문자를 받은 관람객이 나가면서 “이게 끝난 것 맞죠?”하는 의문과 함께 공연은 현재 시간축으로 다시 소환되는데, 그렇다면 저 공간에서 하는 실시간의 경험은 어느 만큼 실시간이(아니)기에 공연장을 나갔을 때에 현재 시간축으로 ‘다시’ 돌아온 것처럼 느껴지는가. <비디오 투어> 관련해서는 여기서 (http://interlab.kr/archives/4252) 짧게 정리를 한 적이 있지만, <Caroline, Drift train>는 머릿속에 떠오른 물음표를 출발점으로 삼아서 나중에 한 번 <비디오투어>와 연결시키면서 정리하고 싶다. 

송민정 <Caroline, Drift train> (퍼폼 2018, 사진: 김주원)

(좌) 더 스크랩 2018 아카이브 룸 (사진: 더 스크랩 트위터 계정)

(우) 더 스크랩 2018 전시장 (사진: 더 스크랩 트위터 계정)

다른 하나는 많은 이미지(들)에 대한 생각이다. 홍진훤 작가의 <랜덤 포레스트>(아트 스페이스 풀), <유령팔>(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 전시된 압축과 팽창의 <Charlie Oscar/Echo X-ray>, 그리고 (두 작가/팀이 운영 멤버로 참여하는) <더 스크랩 2018>에서 수많은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많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양이 많다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관람객이 어떤 특징(작가성, 형식적인 유사성)을 쉽게 잡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세 전시에 등장하는 사진은 찍었던 장소나 피사체가 다르지만 이 세 경우에서 이미지는 이미지자체보다는 그것들의 특징을 포착하기 위한 어떤 수단을 거쳐 정리되는 것 같다. 압축과 팽창의 작업에서 이미지 검색의 알고리즘, <더 스크랩>의 (이전에 참여한 작가의 작업을 한 번에 두 명밖에 못 보는) 아카이브 룸, 그리고 <랜덤 포레스트> 전시장에  가구 안에 같은 크기로 가지런히 넣은 사진들을 보면, 이것들을 특징으로 묶어주는 장치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수많은 이미지들을 다루려면 검색어와 키워드를 가지고 이를 분석해주는 블랙박스가 필요하다. 

이다은 'Image Hunting'

그렇지만 여기서 관람자는 블랙박스의 ‘박스’밖에/‘박스’ 밖에서만 보지 못하기에 이미지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난처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미지를 적절하게 내가 다루는 방법, 이와 관련해서 갤러리175에서 선보인 이다은 작가의 'Image Hunting'가 있다. 이 영상작업은 작가가 몰래 카메라로 어떤 사람한테 찍힌 이미지를 찾아가는 내용인데, 영상을 보면 그 과정과 작품 안에서 적절한 이미지를 고르고 찍으려는 장면이 등장한다. 검색어에서 빗나가는 이미지나, 영상에 나오는 ‘힐링타임’에 적합한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이 작업은 어떤 이미지가 유통되는 과정을 ‘작업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사진 혹은 이미지에 대한 기술적/매체적인 시도와 또 다르게, 블랙박스로 남은 유통과 보관에 대한 내용을 이 네 가지 사례가 어떻게 시각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관람자는 작품에 나오는 이미지(들)를 어떻게 보고 분석해야 하는지, 앞으로 정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6.놓쳐서 아쉬운 전시

As Small As It Works(써머 홀'18)

김윤익 <포유류 대장간>(공간사일삼)

놓친 전시는 모두 아쉽지만 그 중에서도 가야지 하고 계획까지 세웠는데 어떻게 대처할 방법 없이 못 간 전시가 이 두 개이다. 이유는 모두 태풍 때문인데 일본에서 전시를 보고 비행기를 타러 공항까지 갔는데 출발 못하고 결항이 되어버렸다. 이미 스케줄도 잡았고 돌아온 다음 날에 바로 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결국 짐을 들고 다시 본가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 날 아침 비행기를 탔어도 되는데 본가-공항 간 거리가 멀어서 포기했고, 전시 내용이나 다른 작업을 보고 이미 기대감으로 찼었는데 결국 못 봤다. 전시가 좋다고 들었는데 못 가서 아쉽다가 아니라, 가는 생각이었는데 결국 남는게 다른 사람의 소감이나 말밖에 없어서 전시 이야기를 내가 아예 못 꺼낸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7. 2018년의 OOO : 인상 깊었던 (내) 통역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 시타미치 모토유키 워크샵 (ACC)

<애프터 10.12> (시청각)

서울사진축제 특별전 <Walking, Jumping, Speaking, Writing. 境界を、ソウルを、世界を、次元を. 경계를, 시간을, 세계를, 차원을. 신체는, 링크는, 언어는, 형태는.> (SeMA 창고)

2018년에도 몇 번 통역하러 나가는 일이 있었는데, 전시나 프로그램 진행과정에서 계속적으로 관여했던 경우가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선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 시타미치 모토유키(Shitamichi Motoyuki) 워크샵은, 사실 2017년 겨울을 시작으로 작년 8-9월에 몇 번씩 광주에서 진행되었다. 중학교에 가서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여고, 주변에 존재하는 경계선에 대해 정리한 글을 받은 다음, 그 글을 골라서 신문에 올린다. 이 워크샵에서 통역자체는 어려운 일은 아닌데, 작가와 비슷한 분위기를 말로 연출하는 경험은 내게 새로웠다. 정확성도 물론 필요하지만, 논문이나 아티스트 토크와 다른 분위기로 진행을 하다 보니 교육실습생이 된 것 같았다(센세이..!). 참고로 신문에 게재되어 정리한 내용이 곧 책으로 나온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다. 한국으로 책이 올 수도 있다네요..! 

(좌) <애프터 10.12> 아티스트 토크: 스기모토 켄스케 X 정유진(사진: 시청각 트위터 계정)

(우) 광주일보 2018년 8월 17일 문화면 중에서

시청각 <애프터 10.12> 또한 전혀 다른 통역과정이 필요했는데, 이 전시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생각했던 ‘시차’나 ‘겹침’이 아티스트 토크를 통해서 관람객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기획자의 포지션은 작가의 말을 통해서만 전달되고 작가가 작가의 생각은 물론 기획자의 생각을, 관람객이 작가에 대한 질문을, 그리고 두 작가가 서로에 대해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는, 얽히고 섞이는 장(아수라?)이 되었다. 이 자리에서 통역자는 스기모토 작가에게 한국어를 일본어로, 그리고 일본어를 한국어로 관객과 정유진 작가에게 전달했는데 이 과정에서 미묘하게 시차가 생기고 정말 특이한 아티스트 토크가 되었(던 것 같)다. 다만 시차가 길어지거나 오류가 났을 때 관객들이 많이(!) 지루해 했었을지도 모른다. 가을 바람이 쌀쌀한 저녁 시간이었는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헤매는 콘노 유키" (사진: 김익현)

마지막으로 서울사진축제 특별전의 경우 일본 교토와 서울 세마창고에서 통역을 했는데, 두 나라에서 통역을 할 때마다 정말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몇 번 해본 경험이 있지만 여전히 외국인이고(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제가 하는 말은 ‘배운’ 말입니다), 그렇다고 도쿄는 물론 간사이 지역도 마찬가지로 일본을 떠난지 (왔다갔다 했지만) 10년을 넘었고, 그러다 보니 THE COPY TRAVELERS 멤버와 일본어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말이 꼬이거나 어쩌다 번역투가 나와버릴 때 정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전시가 끝나고 돌이켜보니, 정말 내 자신이 이번 전시의 제목 <Walking, Jumping, Speaking, Writing. 境界を、ソウルを、世界を、次元を. 경계를, 시간을, 세계를, 차원을. 신체는, 링크는, 언어는, 형태는.>와 같았다. 자아분열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본과 한국 두 나라에서 생활해온 (각각 12년과 13년) 사람이 통역과정 뿐만 아니라 양국간의 미술씬, 작가와 작업, 사회문화적 이해를 둘러싸서 그 중간지점에서 얼마나 (꼭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흔들리고 있는지, 내 정체성이 이렇게 특이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고민을 해 나갈 것  같은데, 양국 미술씬에서 (정보나 기회의) 통신사 역할로 계속 하고 싶다. 그 외에도, 사실 와우산 타이핑 클럽을 비롯한 여러 활동들을 통해 이미 내 안에서 번역과 통역을 거듭되고 있지만, 작년을 돌이켜봤을 때 이 세 가지 경험을 통해 내가 양국 간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모색과정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 같다. (곧 좋은 소식과 함께..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