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시선: 사진을 보기에 대해서, 김보리 <사진찍어줄게요: 오프라인>
빛 바랜 시선: 사진을 보기에 대해서
김보리 <사진찍어줄게요: 오프라인>,공간 사일삼, 2018. 8. 4 - 8. 19
글 콘노 유키
디지털 편집기술이 발달하고 가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흔한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진은 촬영자에게 친숙하고 가까운 대상을 포착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런치메뉴, 여행지 자연경관,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등등. 그런데 오늘날에 사진(또는 사진 속 피사체)으로부터 느끼는 친숙함은 서랍장에 넣어 혼자 간직하는 일기장 속 사진, 혹은 지갑에 넣고 간직하는 애인 사진의 그것과 다르다. 오히려 이제 사진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또 배회하는, 개방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이다. 사진 하나에 여러 명이 동시에 접근할 수 있고 또 공유를 통해 유통경로를 확장하는데 여기서 사람들은 사진을 보다가 가끔씩 지쳐버린다. 이러한 피로감은 이미지의 양도 그렇지만 사진에 비춰진 대상의 강렬한 존재의식 때문에 그렇다. 게티 이미지처럼 어디에나 있을 법한, 보편적인 대표 이미지와 다른 ‘매끄럽지 못한 사진’들이다. 이러한 사진은 1.표정이나 각도에 신경을 많이 못 쓰고 있는 한편, 2.남의 사생활에 대한 과잉정보 때문에 보다가 지쳐버린다. 특히나 스마트폰이 널리 쓰이면서 보기에 매끄럽지 못한 사진들이 흘러가는데, 어쩌면 사진어플의 특수효과, (주로 필터효과가 적용된) 인스타 사진발은 그런 특성을 없애주고 다른 사람이 보기 편하게 만드는 하나의 장치일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김보리 작가의 이번 전시 <사진찍어줄게요 : 오프라인>는 사람들이 사진을 보는 시선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작가는 의뢰인에게 연락을 받고 직접 사진을 찍으러 간다. 공간 사일삼에서 이번에 소개된 작업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촬영된 사진들이다. 사진들은 크기를 달리하고 또 굿즈로 제작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장에서 관객들을 맞이한다. 때문에 작가와 지원자의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의 개방적인 공간으로 확장된다. 전시가 열린 공간사일삼에서 사진에 찍힌 인물들은 사진을 통해 촬영자가 아닌 불청객을 만나게 된다. 감상자 입장에서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사실 내 관심사도 아닌 어떤 사람들의 삶의 단편이고, 일반적으로 성사되지 않는 만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장은 사진 속 인물과 관람자 서로에게 낯선 공간이 된다. 이때 전시공간은 생각보다 오픈되지 않은 낯선 조우가 지배하는 공간이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전히 사적인 사진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여질 때 미약하게나마 당혹감을 준다. 비록 작가가 찍는 사진이 다큐멘터리처럼 때로는 극적으로 보이는 경우조차, 피사체를 둘러싸서 많은 정보들이 담겨져 있다. <사진찍어줄게요: 오프라인>에서 낯선 만남은 관람자에게 어떤 사진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즉 어디서 찍었고 왜 촬영을 희망했는지 등등, 배후에 깔린 여러 정보를 짐작하게 된다. 이는 디지털 환경에서 경험하는 것과 달리, 은밀한 만남을 통해 성사되고 정보가 그대로 노출되지 않는 이미지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작품은 내용의 ‘노출’이 아닌 내용의 ‘함유’에 의해 매끄럽지 않은 사진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단번에 파악되거나 알아볼 수 있는 사진과 다른,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사진이다. 그런데 사진의 이러한 특성이 이번 전시를 통해 다소 무뎌진 부분은 작가가 오프라인으로 구상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굿즈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알아볼 수 있다. 전시장에 있는 의자, 접시, 그리고 티셔츠를 보면 어떤 이의 요청을 통해 작가가 찍은 인물 혹은 사물의 이미지가 프린트되어 있다. 여기서 사진 속 인물이 보내고 내가 받았을 때 상대방에게 느끼는 은밀한 시선은 물품으로 이행되어 조합되었을 때 마모되고 있다. 즉 프레임이 가시화되었을 때 우리가 보내는 시선은 사진(이라는 매체)자체, 즉 ‘어떤 사진’이 아닌 ‘이 사진’이 된다. 그것은 가리키기 편하고 내가 어떤 것이라 쉽게 일컬을 수 있는 사진이다.
‘어떤 사진’이 ‘읽기’를 요구하는 한편, ‘이 사진’은 ‘보기’에 더 중점을 둔다. 이번 전시에서 작품에 나오는 인물,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흐르는 시간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관람자인 다른 사람의 침입을 허락해준다. 이를테면 프레임 안의 상황에 대한 개입으로, 더 나아가 소비재 형식으로 대상화되면서 사진을 만질 수 있다는 보다 직접적인 침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 침입은 굿즈가 되었을 때 개인과 그 공간에 대한 이해 즉 ‘읽기’로 넘어갈 수 없다. 프레임 안에 담겨진 수많은 정보는 전시공간에서 의자나 접시로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이때 사진은 일종의 장식물처럼 기능한다. 여기서 피사체와 그 환경에서 오는 시선은 사진으로 부각되었을 때 대상화되면서 내가 다루고 통제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용도에 압도된 사진은 카메라가 포착한 개인의 서사와 공간을 제대로 파악 못하게 한다. 전시장에서 졸업식 사진은 등받이로 쓰이며, 커튼에 프린트된 초상사진에서 눈빛은 반쯤 가려져 있다. 여기서 ‘가려진 눈빛’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피사체와 관람자의 시선 변화를 각각 짚어준다. 사진가를 향한 피사체의 시선은 이제 더 넓게 불특정다수를 향하는 한편, 관람자의 시선은 프레임에 담겨진 상황이 아니라 대상화된 이미지로 향한다. 굿즈로 나타난 사진을 사람들이 마주할 때, 어느 날 어떤 곳에서 찍힌 사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생생함은 사그라든다. 이처럼 장식물이 된 사진에 대한 시선은 사진으로(써) 나타났을 때만큼 깊이감이 없고 그것들을 보는 우리의 시선 또한 마찬가지다. 사진이 오프라인에 들어올 때 우리는 어느 만큼 그것을 읽고, 혹은 보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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