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C의 스크랩 - 이기원

📍 이기원의 스크랩 - 10장

01번 : 정희승 / 01 - Lying Awake

02번 : 문형조 / 01 - Leftover

03번 : 장성은 / 08 - summer leaf

04번 : 권오상 / 06 - Lotus 8

05번 : 권경환 / 07 - Ghost 01

06번 : 이은희 / 10 - Contrast of Yours_2

07번 : 박아람 / 04 - Two of  the Photo in Your Camera Roll

08번 : 오연진 / 02 - Contact(iPhone6)_TheScrap2017_#2

09번 : Yuki93 / 08

10번 : 우한나 / 08 - DEM flash 14:34

 

1. 가기 전에 생각했던 키워드 혹은 선정기준은 이렇습니다.

👉  막연하게 생각했던 기준은 ‘납작한 이미지’였다. 정확하게는 어떤 3차원 공간을 보여주는 사진이 아니라, 2차원 평면을 그 자체로 보여주는 이미지를 떠올렸고, 이는 도판 혹은 복사촬영으로서의 사진, 스크린샷, (평면 이미지를 지시하는)영상 스틸컷 또는 레이어가 두드러지는 종류의 이미지를 포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납작한 이미지’라는 게 명확하게 정의되기 어려운 개념처럼 느껴져서 내 관점에서 이런 사례들을 모아보면, 이 개념에 조금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측면도 있다. 다만 10장을 모두 한가지 키워드로 선정하기에는 나의 소유욕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었기에, 2~3장 정도는 오로지 나의 취향의 차원에서 좋아하는 사진을 고르고, 그 중 1~2장은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사진을 고르려고 했다.

2. 쇼룸에서 사진을 고르면서 실제로 작동한 기준은 이랬습니다.

👉  막상 쇼룸을 둘러보니, 계획대로 고르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먼저 가장 ‘납작하지 않은’ 이미지를 걸러내기 위해 각각의 사진을 보며 화면(또는 카메라 렌즈)와 피사체의 거리를 상상하며 둘러봤다. 처음 쇼룸을 돌 때는 1,000장의 이미지가 그냥 하나의 덩어리로 보여서 크게 멘붕이 왔으나, 차츰 돌아보며 명확히 작가가 누구인지 알 것 같은 사진을 제외하기로 했고, 가능하면 10장이 모두 다른 작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기준에 맞는 것으로 보인 이미지는 약 25장 정도였고 여기서 같은 작가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을 추려냈다. 마지막 단계에서 작동한 기준은 결국 ‘납작한 이미지’에 부합해 보이더라도, 이것이 구매/소장할만큼 시각적인 매력이 있는가였다. 최종적으로 나의 키워드에 부합하는 사진으로 8장을, 2장 중 하나는 나를 위해, 하나는 여자친구에게 줄 것으로 골라 10장을 완성했다.

3. 이 사진을 왜 골랐냐면.. 💁🏻

01번 : <더 스크랩>에 가기 전 유일하게 "이 작가의 사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정희승이었다. 둘러보니 몇몇 사진이 명확하게 정희승 작가의 것으로 보였으나,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패스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희승 작가가 사진에 색면을 깔아둔 것 같다는 가설을 세웠고, 이를 바탕으로 (고양이가 아니면서)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사진을 골랐다(사실 우주, 행성과 같은 키워드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하지만). 덕분에 스토리지에서 사진을 받을때, 누구의 것인지 가장 궁금했던 사진이었다. 오로지 (작가가 누구인지까지 포함하는)취향에 따른 선택.

02번 : 여자친구에게 줄 사진으로 고른 것, 평소 감자튀김과 그것의 이미지를 좋아했던 터라 보자마자 선물용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미지 자체도 꽤 매력적이었고, 스토리지에서 작가를 확인하고는 꽤 놀랐다. (정작 전시나 작업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평소 SNS를 통해 관심있게 보던 작가였기 때문. 

03번 : 티켓에 가장 마지막에 추가한 사진. 온전히 ‘납작한 이미지’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각적으로 끌렸던 탓이 조금 더 컸다. 얼핏 봤을 땐 일반적인 정물사진처럼 보였는데, 식물 이파리 뒷면이나 왼쪽의 검정 패턴 부분이 마치 레이어를 아래에 얹은 것처럼 보였고 이 부분 덕분에 이 사진의 깊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덕분에 호기심 반 취향 반으로 고른 것. 작가노트와 캡션에 따르면 “Writing Play” 시리즈의 한 작품으로 예상되는데, ‘공간이 장소로 변화하는 순간들을, 공간의 배치된 일상들을 사진에 담고 있다’는 내용 덕분에 여전히 명확히 파악되지 않는 사진. 덕분에 아마도 예술공간에서 열린 동명의 개인전을 못 봤던 것이 더욱 아쉬워졌다.  

04번 : 로터스의 로고가 등장해서 자동차와 관련된 이미지라는 생각은 했는데, 실제로 사진에 보이는 부품-기계들이 자동차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우주선이나 비행기 부품처럼 느껴져서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사진 속 구도가 어딘가 꼬여있는, 평면과 입체, 레이어가 뒤섞인 것으로 보여서 한참 고민하다가 골랐다. 작가노트를 보니 권오상의 ‘플랫’ 시리즈의 미공개작이라는 걸 알았고, 이미지의 구조상 내가 생각한 ‘납작한 이미지’와 온전히 부합하는 건 아니지만 ‘플랫’이란 키워드로 묶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05번 :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미지긴 했는데, 도무지 어디서 봤고 누구 것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고, 사진 속 두 가지 레이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내가 고른 키워드에 부합한다고 봤다. 숫자 이어그리기를 통해 사진에서 지워진 시신을 드러내는 작업이라는 것까지는 사진을 보며 예상했는데, 스토리지에서 작가노트를 확인했을 때 그제서야 어디선가 봤던 것이란걸 확신했다. (여전히 그게 어디였는지는 기억이 안남..) 숫자 점들이 사진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지시하고 그 아래 레이어로 깔린 사진이 도판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납작한 이미지’랑 연결될 수 있다고 봤다.

06번 : 직관적으로 이것이 스마트폰 카메라 화면을 캡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물의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에 안면인식 표시가 띄워져 있었기 때문. 그래서 뒷 레이어로 작용하는 이미지가 어떤 군중을 촬영하면서 카메라가 초점을 맞추는 과정에서 흐려진 것이라고 봤다. ‘납작한 이미지’로서 스크린샷의 맥락에 가장 가깝다고 봤다. (물론 <더 스크랩>에서 모두의 시선을 강탈한 손주영 작가의 것으로 강력히 추정되느 노인-캡처 이미지도 있었지만 앞서 언급했듯 누구의 것인지 너무 명백하고, 또 구입/소장의 측면에서 시각적인 매력이 떨어져 제외한 터라) 스토리지에서 사진을 받고 이것이 이은희 작가의 것이란 걸 알았을 때 역시 반가웠던 느낌이 있었는데, 지난해 한예종 전문사 졸업전시에서 그의 작업을 꽤 재밌게 봤던 기억 때문이기도 했다.

07번 : 쇼룸을 둘러보는 중간 중간 완전한 파란색 색면 이미지가 보였다. 또 한편으로는 <더 스크랩>의 로고 색상과도 일치하는 것처럼 보여서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이미지를 출품했는지 호기심이 더 컸고, 각각의 파란 이미지들이 거의 구분되기 어려운 동일한 것처럼 보여서 특정한 이미지 위에 파란 레이어를 덧씌운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지점에서 <더 스크랩>에서 본 가장 납작한 이미지가 아닐까 싶었고, 속는 셈(??)치고 골랐다. 작가노트를 확인하고 보니 재밌었던 건 캡션이었다. ‘One of the Photo in Your Camera Roll’, ‘The Last Photo in Your Camera Roll’, ‘Recently Deleted Photos in your Camera Roll’ 등의 제목에서 박아람 작가의 카메라롤에서 추출한 또는 구글에서 해당 키워드로 검색한 사진에 파란 레이어를 덮은 게 아닐까 싶다. 작가노트는 ‘휴대폰 카메라롤에 있는 몇천장의 사진 중 무엇을 낼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사진을 고르는 일 자체에 관해 생각했다. 빛과 기억의 경로와 결정체에 관해 생각했다. 자명하면서도 그 전부를 완전히 헤아릴 수 없는 것에 관해 상상했다.’고 말하는데,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08번 : 쇼룸에서는 아이폰을 엑스레이로 촬영한, 또는 스캔한 이미지라고 봤다.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도 모르겠지만, 두께를 지닌 물체인 아이폰을 설계도면처럼 보여준 것이 ‘납작한 이미지’와 연결됐다고 판단했다. 작가정보를 받고 나니 시리즈 제목이 ‘Contact(밀착)’이라는 걸 알게 되서 의도와 결과가 잘 부합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오연진 작가 역시 그간 보여준 작업에서, 인쇄물 또는 평면을 통해 시각성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들을 지속한다는 점에서 지켜봤던 작가 중 하나였다.

09번 : 고를 때는 이것이 항공촬영 또는 위성사진의 대형 필름을 스캔하거나 이를 레이어 삼은 것으로 보았다. 결정적으로는 필름 테두리와 그 위에 쓰여진 문구들 때문에 직접 찍은 이미지가 아니라고 봤기 때문. 같은 작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미지들도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이 사진을 골랐는데, 나머지 9장도 모두 확인하고 싶어졌다. 작가를 확인하고 <더 스크랩> 홈페이지를 거쳐 Yuki93 작가의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했다. 완전히 몰랐던 작가를 알게 됐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더 스크랩> 최고의 수확.

 

10번 : 처음에는 데이터모쉬(Datamosh) 기법의 스틸컷이라고 생각해서 김정태 작가의 것이 아닐까 추측했었는데, 자세히 보니 포토샵의 페인트통 툴을 이용해 사진에 특정 색상을 부은(?) 이미지로 읽혔다. 이런 측면에서 사진 속 3차원 공간이 포토샵에서 완전한 평면으로 인식하고 색을 부어 평면화시켰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스토리지에서 작가정보를 확인하고 캡션을 보니 이것이 영상 스틸컷에 기반하는 것으로 해석됐는데, 덕분에 약간 혼란이 왔고 정확한 작업 프로세스가 궁금해졌다. 

4. 모아놓고 보니 이렇네요 

👉  모아놓고 보니 전반적으로 사진들의 톤이 유사하다는 느낌(파랑 또는 하늘색 계열 또는 파스텔톤)을 받았다. ‘납작한 이미지’라는 키워드가 시각적인 측면에서는 특별한 공통점이 짚히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5. 고르지 못했으나 눈에 밟히는 사진은 

👉  0990번과 0854번, 0990은 십자가가 있는 심플한 사진이긴 한데, 이미지의 표면이 망점 인쇄를 스캔한 듯한 모습이라 ‘도판’이라는 측면에 부합한다고 봤는데, 개인적으로 십자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제외했다.

0854번은 특정 도상 혹은 고전회화를 찍은 사진을 가상의 3차원 공간에 세워두고 그 위에 애니메이션 효과 같은 레이어를 얹어준 형상이라 ‘납작한 이미지’에 부합한다고 봤다. 시각적으로도 매력적이었기에, 고르지 못하게 된 건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최종 선택 과정에서 빼먹은 것으로 보인다. 

6. 다른 멤버들의 스크랩을 살펴보니 

👉  각자 사진을 고르는 기준과 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같은 사진을 골랐어도 각자의 이유와 주의깊게 본 지점이 달라서 흥미로웠는데, '사진은 여러 방식으로 해석 될 수 있다'는 걸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사례로서 느낄 수 있었다. 각자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레이어'를 키워드로 꼽은 경우가 꽤 있었는데, '레이어'에 대한 해석 역시 다양하다는 점은 조금 의외였다. 또 한편으로는 어쨌거나 1,000장의 사진 가운데서 각자 취향과 기준에 맞게 골랐는데, WTC 내부에서 겹치는 작가/이미지가 많다는 점 역시 재밌었다. 이게 <더 스크랩>의 전체 관객에게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