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아카이브)-‘나’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
공동체-(아카이브)-‘나’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 일민미술관 2017.09.15-12.3
글_ 송이랑
우리는 한해 전 광화문 광장에 울려 퍼진 시민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하지만 이렇게 특정 시기나 사건을 소환하지 않더라도 광화문 광장은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 문화적 배경이 되며 ‘광장에 함께 있다’는 공동체의 발현을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일민미술관의 기획전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은 이러한 광장 속 목소리를 미술관으로 가지고 들어와 역사적 공동체와 현대 사회의 다변화된 이익구조 속에서 생겨난 공동체, 그리고 미래의 공동체의 형태로 풀어낸다. 전시는 사회학자, 다큐멘터리 감독, 디자인 그룹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 및 연구자들이 구성한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에 대한 아카이브를 펼쳐 보여준다. 각각의 작품이 구체적 공동체에 대한 아카이브인 동시에, 전시 전체는 ‘공동체 일반’에 대한 아카이브라고도 할 수 있다.
전시는 크게 3개의 섹션으로 나눠진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삶의 실존적 영토에 존재하는 반복구로서의 화음, 즉 ‘민중의 리토르넬로(ritornello)’를 보여준다. 군상의 몸짓을 통해 집단적 리듬을 그린 오윤의 목판화 '춘무인추무의'(1985)와 이응노의 수묵화 'No.64'(1986)는 고려인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김소영 감독의 '고려아리랑: 전산의 디바'(2017)로 이어진다. 전국 각지의 노동요를 수집한 민요연구가 이소라의 아카이브 등 소리와 춤, 리듬을 키워드로 한 전통적, 역사적 공동체의 기록들은 한받의 '구루부 구루마'(2011)등의 작업을 통해 현재의 리듬으로 다가온다.
두 번째 섹션인 ‘시민, 난민, 유민: 조화와 반목의 시나리오’에서는 근대 산업자본주의와 동시대글로벌 자본주의 등 사회적 조건과의 연계 속에 존재하는 사회적, 정치적 공동체를 시각화하여 전시한다. 세계 각국의 일본식 가옥을 추적하고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유스케 카마타의 '집'(2017), 사당동 재개발을 통해 도시빈민의 삶과 공간에 대해 연구한 사회학자 조은의 '없는 공동체'(2017) 등의 아카이브는 감춰진 사회의 이면을 드러낸다.
세 번째 섹션 ‘타임라인 위에 모인 마을, 공동체, 사람들’은 소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일시적이고 임의적인 공동체들에 주목한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토대로 생산되고 전개되는 공동체 활동을 미술관 내에서 또 다른 매체를 통해 시각화한다는 측면에서 파일드-타임라인의 '파일드-타임라인 라이브!'(2017)는 흥미로워 보인다. 웹에 게시한 글을 실시간으로 출력함으로써 공동체가 관객 앞에 나타나고, 이때 미술관은 공동체의 사회적 이슈와 관심사를 나누는 일시적 공유지가 된다.
2전시실 전시전경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이라는 타이틀이 나타내듯이, 공동체는 추상적이면서도 실재한다. 정서적 유대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는 공동체를 전시로 풀어내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공동체와 마주한 관람객이 어떠한 태도를 취하도록 하는가 이다. 이에 대해 “공동체 안에서 개인이 제도와 배치의 주체로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조직하고 집단의 실존적 배치들을 재구성”하도록 했다는 기획 의도대로 전시가 구성되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전시장을 따라 만나게 되는 각개의 연구 집적물은 감춰져 있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사회의 이면을 밀도 있게 다루며 관람객의 흥미를 유발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공동체’라는 키워드로 점점이 늘어설 때 그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고, 전시에서는 방대한 아카이브를 어떤 식으로 꿰어 나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잘 구축되고 정리된 자료’를 보여주지 않는 방식, 다시 말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장-뤽 낭시(J.-L. Nancy)의 공동체의 ‘무위(無爲)’ 개념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기획자가 어떤 태도로 공동체를 인식하고 있는지 드러내준다. 미완성을 결핍의 상태로 보지 않고, 분유의 역동성, 무위의 역동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불친절한 방식은 물밀듯이 들어오는 공동체의 목소리들이 미처 소화되지 못한 채 웅성거리는 소음이 되거나, 그저 윤리적인 관점으로 공동체를 연민의 대상으로서 타자화시킬 우려가 있다. 몇몇 작품, 예를 들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와 데이터 속에서 ‘숨은 메타 진실’을 발견하도록 하는 심철웅 작가의 '허락받지 않은 타자들의 30년'(2017)이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서울 지부를 가상의 배경으로 설정한 사회학자 서동진의 '어느 상황주의자의 방'(2017), 정은영 작가의 '틀린 색인: 여성국극 아카이브'(2017) 등의 작품은 관람자의 능동적인 개입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전시를 통관하여 관람자의 세계 안에 공동체를 위치 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심한 장치가 마련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퍼포먼스, 워크숍, 강연, 스크리닝 등의 전시 연계 프로그램은 주제를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주지만 이것 또한 전시 자체의 느슨함를 보완하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이 ‘완전하지 않은 아카이브’로서 결핍의 상태에서 나아가 공동체와 ‘나’ 사이의 끊이지 않는 이행의 가능성을 갖기 위해서는 관람자의 능동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점에 기대어 전시의 상당 부분을 관람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3 전시실 전시전경
이미지 제공: 일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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