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특집 08 - 일본의 동시대 미술비평 플랫폼 : 대담(하)
일본의 동시대 미술비평 플랫폼
-도쿄 특집 정리 대담(하)
참여 : 김이현, 송이랑, 이상엽, 장예지, 콘노 유키
모더레이터 : 이기원
편집 : 장예지
미술지면과 비평
장예지: 이제 비평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유키씨와 이랑씨는 인터뷰 대상의 선정 기준이 뭐였나요?
콘노 유키: 일단은 리서치를 하다 보니까 나오나카무라 공간이 갤러리 이름이긴 한데데 뭔가 하는 일이 갤러리 같지가 않은 거예요. 예를 들어서 소속작가도 공간 자체도 아예 없고. 그러면 이게 뭘까, 그걸 물어보려고 인터뷰를 했어요. 비용 문제처럼 현실적인 이유로 자리를 이렇게 대여만 받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고, 운영자 본인이 좋아해서 하는 건지도 궁금했었어요
김이현: 그러면 그 사람이 기획한 전시를 여러 번 봤으니까 알았던 거네요? 만약에 전시를 한 번 보고 나면 그냥 그 전시 장소나 기획자를 알고 마는데, 그 기획자의 전시를 여러 번 봐야 이 기획자가 지금 계속 돌아다니면서 하고 있구나 하고 인지가 되는거 아니에요?
콘노 유키: 제가 처음에 그 정보를 얻었을 때 전시공간 바로 그 뒤에 꺽쇠 표기로 「나오나카무라」라고 해서 소개한 걸 보았어요.
이기원: 위치를 알려줘야 하지만, 이게 지금 어떤 이름으로 전시를 하고 있는지를 알려야 하니까?
콘노 유키: 네. 그니까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어요. 그 공간을 운영하는 주체가 누군지 확실히 감이 안 잡혔어요. 그렇다고 나카무라 씨가 어떤 큐레이팅을 기획전하겠다 이런것도 아니었어요. 거의 개인전 위주로 많이 하고 있었어요.
이기원: 큐레이팅의 맥락에서 기획을 하는 느낌은 아닌 거네요? 그럼 이분은 작가인가요?
콘노 유키: 작가는 아니에요. 나카무라 씨는 미학교라는 학교를 나왔는데 거기는 전문학교의 개념이에요. 거기서 들은 수업이 자신의 작업을 보여줘도 되고 기획하고 싶은 사람은 기획을 해도 좋다 이런 느낌이에요. 그 분은 보조, 스태프 역할을 하는걸 좋아해서. 그게 처음 시작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큐레이터 보다 디렉터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송이랑: 제가 인터뷰한 리틀배럴도 처음 접촉하게 된 건 유키씨랑 비슷해요. 일단 가고 싶은 전시들을 조사해보니 리틀 배럴이 미술 수첩에 소개가 되었더라구요. 여기가 2017년 11월에 새로 오픈한 공간이면서 운영하시는 분이 오랫동안 전시 기획을 해오신 분이라 가볼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일본인들이 보기에도 흥미로운 공간인지 미술수첩 기사에서 그 맨션을 인상깊게 써 놨더라구요. 그 공간을 한번 직접 보러가고 싶었어요. 직접 가 보니까 공간은 되게 작은데 기획이 많이 들어간 전시를 하고 있다는 인상이었어요. 지금 전시가 <그 소설 속에서 모이자> 라는 타이틀로 여러 작가를 소개하는 기획이거든요. 그런데 공간적인 제약 때문에 그룹전이 아니고 개인전 형태로 돌아가는거예요. 그 개인전들을 쭉 이어서 보면 하나로 엮이는거죠. 그런 게 되게 재밌었어요.
이기원: 각각은 개인전인데 이걸 모두 챙겨보면 단체전이 되는 개념이네요? 제한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최적화된 단체전 방식을 찾아낸거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송이랑: 맞아요. 그게 어떤 공간적 한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거를 뛰어넘는 방식을 자기가 찾아낸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기원: 공간을 쪼개는게 아니라 시간을 분할해버리는거네요.
송이랑: 그래서 후도록으로 전시들을 모으고 싶다고 했어요. 근데 이 회사 자체가 그 전시 기획을 하고있는 회사잖아요. 출판, 영상제작도 하고, 총체적으로 그런 전시에 관련한 모든 일을 하는 회사기 때문에 가능한거죠.
이상엽: 사실 도록으로 그걸 묶어내면 진짜 한 전시처럼 보이겠네요.
장예지: 보는사람 입장에서 진짜 쿠폰에 도장찍는 것처럼 계속계속 보고싶게 하는 스타일이겠네요.
송이랑: 저희가 갔을 때는 두 번째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첫 번째 전시는 개관전으로 네 명을 모아서 소설의 프롤로그처럼, 작품을 티저처럼 보여줬고요.
이기원: 개인전인 동시에 그룹전이 될 수 있다는게 되게 흥미롭네요.
송이랑: 그렇죠. 근데 이게 하다보니까 이 작가들 이제 연결지점이 계속해서 생길거 아니에요 이게 기간을 두고 하는 기획전이기 때문에 그래서 원래 네명으로 기획을 했었는데 열 명까지 묶어보고 싶다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이기원: 제가 신기했던 것은 미술수첩이 일본 안에서 메이저한 잡지인데 그런 세세한 공간들까지 다 다뤄주고 소개한다는 거예요.
장예지: 저도 약간 궁금한게 그 미술수첩의 위상..이랄까요? 그런게 와 닿지 않네요. 그 외에도 미술수첩을 대체할만한 매체가 있을 거 아니에요. 우리도 이런 잡지가 많지만 신생공간들을 다양하게 다루지 않잖아요.
이기원: 그니까 지금 그런 것까지 종합해서 봤을 때 미술수첩은 한국의 월간미술같은 월간지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아트바바같은 기능까지 하고 있다는 걸로 봐도 되나요?
콘노 유키: 다른 웹진도 이런 동시대 공간을 소개하지만 책자의 형태로 출판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점이 미술수첩의 강점이 아닐까 싶어요. CINRA.NET 혹은 도쿄아트비트는 온라인 매체 밖에 없어서 정보가 휘발적이고요.
장예지: 우리는 이런 정보를 찾기 위해서 웹상에서 발품을 팔아야 하죠.
송이랑: 위상을 딱 한마디로 얘기할 수 없겠지만 인터뷰이 두 분한테도 이번 미술수첩의 특집호가 아트 콜렉티브이기 때문에 참고하라는 팁을 받았어요. 미술 공부하는 친구들이나 지금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참고를 많이 해요. 그런 면에서 미술수첩이 시대 맥락을 잘 읽어내고 있는 것 같아요.
김이현: 그리고 오히려 계속 이렇게 책의 형태를 유지한다는 점이 우리 입장에선 재밌네요.
이기원: 확실히 일본은 출판물이 강세인 동네죠.
이상엽: 그럼 비평이 실리는 지면이라 할 만한 게 미술수첩 외에는 없나요?
송이랑: 아니요. 지면은 되게 많아요 ‘예술신조(芸術新潮)'라던지, 각 장르별 잡지도 많고. 미술잡지가 정말 많은데 광고가 반이고 그런 것들은 학교 다니면서도 도서관에서 보거나 몇 개의 기사만 보는 정도였어요.
장예지: 그때 우리 비평가 얘기도 했었잖아요. ‘철학가’라고 불리면서 비평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고.
송이랑: 맞아요. 전통적으로 비평가라고 하면 미술수첩의 ‘미술 평론 공모’를 비평 등용문이라고 해요. 그래서 학교에 있는 젊은 선생님들, 70,80년생들은 대부분 그 비평콩쿨 출신들인 경우가 많고. 이번에 찾아보니까 미술비평연맹이라는 것도 있더라구요. 전후에 생긴건데 형식으로 보면 학회와 더 유사해 보이긴 해요. 전통적으로는 이런 것들이 위상을 갖고 있기는 한데, 요즘은 등단이 아니어도 각자 활동을 하고 있죠. 지인 의견으로는 일본 동시대미술에서 비평이라는 게 거의 기능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해요. 그 이유가 작가 자신이 비평가나 큐레이터를 겸하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 동향이 지금 주목받는 아트콜렉티브인거고요.
콘노 유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까 얘기했던 카오스*라운지도 구성원 세 명 중에 두 명 작가이고, 한 사람은 쿠로세 요헤이라고 비평가가 있어요. 그 사람이 83년생 젊은 나이이고 카오스*라운지 자체가 아즈마 히로키(Hiroki Azuma, 東浩紀)가 세웠던 회사 겐론(Genron)에 속해 있어요. 일본에서 미술비평이 사실상 문화예술 일반에 대한 비평을 하는 사람이 전통적으로 있었고, 미술에 국한해서 비평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인 경우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쿠로세 요헤이도 아즈마 히로키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쿠로세는 미술의 맥락에서 얘기하면서도 사회적인 맥락들 가지고 미술일반, 서브컬쳐도 다루어요.
송이랑: 거기는 또 ‘비평재생학원’이라는 활동도 하고 있어요. ‘다시 살리다' 재생이라는 의미로..
김이현: 근데 그 어감은 비평이 하락 했다가 다시 올라간다는 의미를 깔고 있는 거 아니에요?
송이랑: 비평이 죽었다는 뉘앙스를 깔고 있는거죠. 일본 비평이 기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외에도 파프룸(Parplume, パープルーム), 온고잉 컬렉티브 (Ongoing Collective) 거기에도 비평가가 포함되어 있고
이상엽: 각 팀마다 비평가가 껴 있는 거라면, 비평가들끼리의 커넥션보다 그룹 내에서의 커넥션이 더 많다는거죠?
송이랑: 그렇죠. 또 진 형태로 공동출판을 하는 일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각기 비평가가 아트 이벤트나 토크를 통해서 일시적으로 모이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와우산 타이핑 클럽이나 옐로우 펜 클럽, 집단오찬 같은 모임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서 이런 그룹이 일본에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그런 그룹은 없다고 답변을 받았어요.
장예지: 그럼 일본도 트위터나 SNS를 통해서 비평활동이 이뤄지는 경향이 있나요?
송이랑: 아 트위터 중에서 미소니코미오뎅(Misonikomioden, 美蘇仁神 愛伝!)... 굳이 옮기면 된장절임오뎅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유명하다고 해요. 본인 스스로 아키비스트라고 해서, 제 생각엔 트위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전시모음집이나 -아트바바-같은 사람이 아닌가..
장예지: 그럼 비평이라기보다는 파편적인 전시 아카이브를 하는 분이겠네요. 김이현씨도 트위터 기반으로 열심히 올리고 계신데 그런 느낌이군요. 비평 플랫폼은 따로 없고요.
송이랑: 저는 아트콜렉티브의 형성 배경이 와우산타이핑클럽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일본의 70-80년대 그룹들은 어떤 기조나 사상을 중심으로 비슷한 스타일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면, 아트 콜렉티브는 그런 이전의 방식이 실패했다고 인식하면서도 홀로 활동하는 것의 연약함을 느끼는 거에요. 함께 모여 ‘우리들의 플랫폼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거죠. 우리도 비평을 어떻게 해보자!! 이런 느낌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글을 올릴 플랫폼에 대한 필요성에서 출발했잖아요. 또 다른 비평 매체로는 나고야라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비평잡지가 있다고는 하는데 이게 어느 정도의 위상인지는 모르겠어요.
장예지: 지역별로 있다는 게 특이하네요. 근데 왜 나고야인가요?
콘노 유키: 나고야가 어느 정도 미술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어서.. 아까 얘기 나온 켄지 타키 갤러리가 나고야에 있어요. 나고야에 있는 아이치 예대가 있는데 거기 미술 화단도 웬만큼 유력하다고 들었어요.
이후의 감상
이기원: 그럼 마지막으로, 다들 다녀온 후의 짧은 감상을 얘기해볼까요.
김이현: 저는 도쿄를 두 번째 간 거였는데, 전혀 다른 도쿄를 간 느낌이었어요. 똑같은 장소를 갔는데도 이번에는 아예 관점이 달랐고, 많은 도쿄의 미술공간을 방문할 목적으로 돌아다니니까 새로웠어요.
송이랑: 그게 도시를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서 그런 거 같아요.
이상엽: 저는 아무래도 제가 서울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전시를 보러 다니는 사람이라 그런지, 도쿄에서의 전시나 공간, 작가를 볼 때도 서울의 것들이랑 어쩔 수 없이 연동해서 생각했던 거 같아요. 도쿄에서 전시를 보면서 느낀 건 여기도 전시가 정말 많구나 하는 거였어요.
콘노 유키: 일주일도 안 되는 중앙본선화랑에서 토크도 두 번이나 진행하고 저렇게 좁은 오피스를 더 반으로 나누어서 전시도 하고, 작은 공간도 기획성을 살려서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했어요. 서울의 전시공간들과 비교한다면 전시와 전시 사이에 텀이 비교적 짧은 거 같아요.
장예지: 도쿄는 비교적 블록버스터 급의 전시, 소위 대중적이라는 전시들이 탄탄하게 기획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국에 비해 미술 향유 층이 다양하다고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전시들도 많이 소비되고 그 만큼 좋은 작품들 들여올 수 있는 거 같고요.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프라도 미술관 전시나 브뤼헬 전을 보면서 어떤 작품들 들여 왔는지 보고 싶더라고요. 사실 서울에서는 그런 전시들 크게 기대 안하게 되거든요. 디자인 미술관이나 사진 미술관같은 경우도 그 자체로 존재감이 크고 체계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고 느꼈고요.
송이랑: 네 맞아요. 한국이나 일본이나 대중적인 전시를 하기는 하지만 그 블록버스터 급의 전시를 할 때 좀 더 탄탄하게 진행된다는 느낌이에요. 아무래도 더 유명하거나 대형 작업들도 도쿄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더 많기도 하고요.
장예지: 근데 저는 대안공간이나 신진공간은 서울이랑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느꼈어요.
송이랑: 저도요. 기획력 측면에서도 그렇고
김이현: 다들 힘든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그런 맥락이 비슷하고 어떻게든 관람객들을 유치하려고 하고 좁은 공간을 쪼개서라도 운영하려고 하고
이상엽: 저는 다음 일본 여행때 어디를 또 가면 좋을지 제 나름의 리스트를 그려 보게 되었어요. 다음에 또 도쿄에 간다면 네즈미술관을 다시 가고 싶고, SCAI도 한번 더 가보고 싶었고요. 코홍야나 리틀배럴, 중앙본선처럼 다른 분들 통해서 얘기만 들은 공간에도 가보고 싶네요.
송이랑: 그렇죠, 어떤 도시를 한번 다녀오면 미술 공간들이 매핑된다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김이현: 한 번만 다녀왔던 곳은 전시공간이랑 작품이 분리되지 않은 것 같아요. 전시에 대한 감상이 공간에 대한 이미지랑 섞이고 뭉개져서. 그런데 몇 번 더 방문하면 공간의 이미지가 좀 바뀔 것 같아요. 그리고 스카이배쓰하우스를 못가봐서 가보고 싶고, 다시 가는 공간들은 그 주변에 맛집이나 예쁜 카페들 연결 지어서 가보고 싶네요.
송이랑: 저는 부가적으로 더 소개하고 싶은 공간은 도쿄 근교에 있는 사이타마현립근대미술관이나 요코하마미술관, 후츄시립미술관, 치바에 있는 DIC카와무라기념미술관이 있어요. 모두 중심지에서 1시간 거리이고, 미술관 규모도 어느정도 있어서 괜찮은 전시를 하고 있다면 갈 만한 곳들이에요. 그리고 나카노 브로드웨이(中野ブロードウェイ)이라는 만다라케(まんだらけ) 같은 중고샵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어요. 지난 도록같은 중고 미술 서적도 많고, 유리로 된 쇼케이스를 개인이 빌려서 소장품을 팔거나 전시하는걸 볼 수 있는데, 그 시스템을 취미가의 <취미관>에서 차용 했다고 알고 있어요. 완전 서브컬처 중심이에요. 거기에 무라카미 타카시(Takashi Murakami, 村上隆)의 카이카이 키키(Kaikai-Kiki, カイカイキキ)가 운영하는 카페도 있으니 다음에 갈 때 참고해 보세요.
장예지: 아, 그럼 저도 전시공간은 아니지만 긴자식스(Ginza Six)에 있던 츠타야(TSUTAYA) 서점을 다시 가고 싶네요. 다이칸야마점은 디자인 서적 위주인데 긴자점은 거의 미술서적 위주로 있어서 볼 거리가 많았어요.
콘노 유키: 다녀오고 나서 보니까 격납고에 업데이트하지 못한 전시 공간들이 꽤 있더라구요...다음에는 더욱 알찬 격납고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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