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체와 분리된 사진, 박동균 <약한 연결>





피사체와 분리된 사진

박동균 ‘약한 연결’ 시리즈


글 이기원



우리는 어떤 사물을 묘사한 그림을 볼 때, 그것을 종이나 캔버스 위에 내려앉은 물감이나 잉크의 결합물이라고까지 인식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림 속 사물을 실제 사물처럼 여기지도 않는다. (사물을 묘사한) 그림은 어디까지나 ‘OO를 그린 그림’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어떤 사물을 찍은 사진의 경우, 여기서 이 사진은 피사체가 되는 사물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흔히 제품사진이라 부르는 종류의 사진들, 그러니까 온라인 쇼핑몰 상품설명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제품컷’ 또는 ‘상세 이미지’는 가장 재현에 충실해야 하는 사진으로 여겨진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재현에 충실하기를 요구받는 사진’이다. 우리는 패션 화보 사진에서 모델이 입은 것과 같은 모습이 내가 이를 구매해 입었을 때도 100% 일치할 것이라 믿지는 않지만, 적어도 제품사진은 옷의 형태나 질감, 색상이 실물과 (최대한)동일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제품 사진 속 사물은 단순히 사물의 이미지가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인 것처럼 여겨진다. 나아가 제품사진 안에는 피사체만 존재하고, 그 외의 요소들은 모두 제거되거나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면서 ‘OO를 찍은 사진’은 마치 ‘OO 그 자체’인 것처럼 기능한다. 이런 맥락에서 제품사진이 적어도 실제로 만들어진 물건을 대상으로 삼는다면, 포토샵 템플릿을 통해 생산되는 목업(mockup) 이미지는 (아직) 존재하지는 않는 사물을 마치 제품사진인 것처럼 재현한다. 이처럼 제품사진과 목업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지만, 이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며 때에 따라 서로 구분되지 않고 쓰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제품사진 속 사물과 목업 이미지가 표상하는 사물은 같은 것인가? 아니면 ‘같아야 하는’ 것인가?


<캐치를 하는 세계> 중 '약한 연결' 전시전경


한예종 조형예술과 졸업전시 <캐치를 하는 세계>(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졸업전시, 2017. 12. 20 - 12. 31)에 참여한 박동균의 <약한 연결>은 전체 전시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진을 주요 매체로 다룬 작가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전제를 빼고 보더라도 눈에 띄는 작업이었다. 먼저 작가노트에 따르면, ’약한 연결’ 시리즈는 크게 세 부분, (1)주변에 편재하는 사물들을 관찰하고 기록한 이미지, (2)사물들을 작업실 안으로 들여와 즉흥적으로 연출하여 기록한 이미지, (3)디지털 가상공간 안에서 사물을 재현하고 생성한 이미지로 나뉜다. 관객 입장에서 개별 작품에서 이를 구분해내기는 어렵지만, 앞서 언급한 제품사진 논의는 ‘약한 연결’ 시리즈의 문제의식과도 이어질 수 있다.


<약한 연결>의 목적은 사물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앞서 말한 세 종류의 작업 방식을 통해 탐구하고 그 미적 양상을 사진-이미지로 가시화하는 데에 있다. 기록, 연출, 시뮬레이션의 순차적인 절차는 특정 환경에 놓인 사물의 물질성을 감추거나 드러내며, 곧이어 나타날 이 미지와 ‘약한 연결’을 맺도록 만든다.  -작가노트에서 발췌



‘약한 연결’ 시리즈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찍은 사진인가?’를 기준으로 설명해야 한다면 이는 앞서 언급한 제품사진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작품은 단순히 제품사진으로 보기에는 어딘가 낯설고 어색한 느낌을 전해준다. 우리가 이것을 ‘어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앞서 짚은 것처럼, 사진 속 사물-피사체-이 일상에서 직접 봐온 실제 사물과 비슷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포토샵 등장 이후 픽셀로 구성된 이미지가 얼마든지 변경, 조작, 재가공될 수 있다는 전제가 생기면서 우리는 사진을 볼 때 의심의 단계를 거치게 됐고, 이는 나아가 사진 속 사물과 실제 사물 간의 ‘링크’를 끊어버리거나 약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이런 지점에서 박동균의 사진은 김상길의 ‘Accession Number’ 시리즈와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물론 두 작가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하지만 이들은 ‘잘 찍고, 세심하게 보정된 매끈한 이미지’라는 점만 공유할 뿐, 다른 접근 방식이과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김상길은 이미지를 접목/변주하는 자신의 프로세스를 통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박동균은 최종 결과물로서의 이미지가 어떻게 작동하고 대상이 되는 사물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집중한다.   




SD17RSAP.FR-75.S_4360_keystone 2015, digital print, 60.1x90.0cm 


‘약한 연결’ 속 수평계, 수도관, 자동차의 헤드램프 등과 같은 사물들은 어딘가 과하게 매끈하고 색이 뒤틀렸거나 반전된, 우리가 실제로 마주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으로 앞서 언급한 ‘링크’가 깨지거나 흐려진 상태로 제시된다. 이는 비단 박동균의 작업에서만 두드러지는 특징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이것이 피사체 자체가 가진 속성과도 이어진다는 점은 특히 흥미롭다. 각각의 사물들은 독립 개체이기보다는 특정한 공간이나 사물에 설치/장착/연결돼 존재하며 배경이나 사물의 일부분으로 인식되던 것들이기에, 그 자체로도 피사체와 실제 사물과의 연결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관람자는 이 작업의 실마리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전통적으로 사진 작업을 해석할 때 사용해 온 열쇠들-“작가는 무엇을, 왜, 어떻게 찍었는가?”-만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해 보인다. 이 열쇠들은 피사체와 실제 사물 간의 단단한 ‘링크’를 전제로 하지만, 어느 순간 이후 이 ‘링크’는 느슨해지거나 아예 끊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링크’가 끊어질 수도 있다는 걸 전제로 두고 사진이 (마치 회화처럼) 스스로 이미지를 탄생시킨다고 생각하는 편이 쉬울지도 모르겠다. ‘약한 연결’의 피사체가 되는 사물들은 ‘(사진으로 재현된)사물’이 되기보다는, 후가공을 거쳐 납작하고 매끈해진 이미지 그 자체로 남으려 한다. 다시말해 사진이 대상을 재현하는 방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이 어도비 툴의 캔버스로 작동하면서 마치 그래픽처럼 디지털 캔버스 위에서 생산된 이미지이다. 목업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재현한다면, ‘약한 연결’의 이미지들은 실재하는 피사체를 마치 목업 이미지처럼 보여준다. 이렇게 그래픽화된 사진에서 피사체로서의 대상은 사라진다. 그렇게 대상과 링크가 느슨해진 이미지는 광학적 재현의 결과물이 아닌 (마치 모더니즘 회화가 그랬던 것처럼) 온전한 2차원의 레이어 이미지로 남는다. 

  

이미지 제공 : 박동균(type-fd.tumblr.com)

  


<캐치를 하는 세계> 중 '약한 연결' 전시전경




SF1F3USX.JP-802_08, 04.12.2016, 2940x4203px, 24.9x35.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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