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C의 스크랩 - 곽현지

📍곽현지의 스크랩 - 5장

01번 : 신선혜 / -

02번 : 권민호 /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 #4, Iceland, 2017

03번 : 최용준 / parallel 372812653

04번 : 권해일 / #04_08. 2017

05번 : 목정원 / 2017년 10월, 아르까숑의 모래언덕

1. 가기 전에 생각했던 키워드 혹은 선정기준은 이렇습니다.

👉 사실상 백지 상태였다. 자다 깨서 벽에 붙여놓은 사진을 쳐다봤을 때 나를 깜짝 놀래키지 않을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연역법도 귀납법도 아닌 애매한 방식으로 취향을 수렴했다.

2. 쇼룸에서 사진을 고르면서 실제로 작동한 기준은 이랬습니다.

👉 쇼룸에 당도하니 너무나 다양한 층위를 가진 이미지들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그 과정에서 추가된 기준은 평평하지 않은 사진이었다. 이미지는 넘쳐나고, 모든 것이 사진이 될 수 있는 시대에 내가 택한 방법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따라서 환영적 현실을 만들거나, 욕망을 투사할 수 있거나,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거나, 무엇인가를 지시하는 사진을 골랐다.

3. 이 사진을 왜 골랐냐면.. 💁🏻

01번 : 따뜻한 실내에서 차가운 설산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냥 좋았다. 다섯 장 중 유일하게 고민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고른 사진이다.

02번 : 눈덮인 평원은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하지만 당장은 마주할 수 없는 풍경이다. 수많은 이미지 중 긴장을 풀게 해주는 사진이었다. 벽에 붙여놓고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을 때 슬쩍 보고싶을 것 같은 느낌이라 골랐다.

03번 : <더 스크랩>에는 아름다운 도시건축물 이미지가 많았다. 5-6장 정도 골랐는데, 그 중 이 사진은 구석구석 보는 맛이 있었다. 상이하게 구분되는 스타일을 가진 세 개의 건물이 역사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 구분된 레이어같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생겼을 수도 있겠고 동시대에 생겼을 수도 있겠다. 오래된 메트로폴리스의 시각성이 아닐까.

04번 : 극도의 합리성이 지배하는 냉담한 공사현장에서 끌어올린 순간의 감각이 돋보인다. 같은 작가의 사진으로 추정되는 여러 장의 이미지 중에서 주황, 노랑, 청록의 공사장 가림막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색조합과 철골 자재들의 리듬감에 매료되었다. 한편 나머지 4개의 사진은 작가의 계정을 통해 실제 장소를 파악했는데 이 사진은 그것을 알아내지 못해 궁금하다.

05번 : 내가 가본 곳 중에서는 넓고 경사진 모래 언덕은 없었다. 부드러운 모래에 누워 아래를 봤을 때 또 모래가 있고 또 사람이 있는 느낌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4. 모아놓고 보니 이렇네요

👉 "내 사진을 한 가지 기준에 수렴시킬 수 있을까?", "취향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과 그래야한다는 의무감으로 사진을 선택하다보니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비주얼이 나온 것 같다. 사진을 찍은 장소에 대한 궁금증이 다섯 장의 사진 선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다섯 사진은 인물이 없거나 아주 작다. 내가 저 곳에 있었으면, 혹은 나도 사진 속 저 곳을 보고싶다 와 같은 관조적인 태도가 반영된 것인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장소에 못지 않은 것이 사진의 색이었다. 흑백 사진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색감이 비슷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옷과 아주 유사해서, 색 취향만큼은 확실하구나 느꼈다.

한편 다섯 장의 사진을 세 작가가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캡션을 보니 작가가 모두 다 달랐다. 같은 작가의 사진인줄 알았는데 각기 다른 작가인 것도 재미있는 지점이다.

5. 고르지 못했으나 눈에 밟히는 사진은

👉 쇼룸을 돌아다니며 20개 정도 골랐다. 10개를 구입할까도 생각했지만, 5개를 고르나 10개를 고르나 부족함을 느낄 것이기에, 번뇌를 멈추기 위해 5개를 추렸다. 번호를 기록해놓은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170번: 모던한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었으나, 건축물 이미지로만 채우고 싶지 않았기에

258번: 02의 사진과 비슷해서

268번: 04의 사진과 함께 고민했으나 분홍색, 주황색보다는 청록색을 더 좋아해서

345번: 05의 사진과 비슷해서

660번: 대체 무슨 사진인지 알 수 없어서 담았으나 슬쩍 삐져나온 손이 살짝 무서워서

974번: 아름다운 오브제임을 인지했으나 내가 고른 다른 사진들과 색감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6. 다른 멤버들의 스크랩을 살펴보니

10명의 스크랩을 일괄적으로 비교하고 교집합을 찾아내는 것은 <더 스크랩>만이 주는 즐거움일 것이다. 표면 대신 서사에 주목한 나의 스크랩과는 달리 다른 멤버들의 스크랩은 사진의 레이어를 읽어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특정 주제를 정하여 스크랩을 했을 경우 그 기준에 맞는 결과값이 나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 번 스크랩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도시건축물 이미지만으로 10장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명의 멤버 중 4명이 권해일 작가의 사진을 골랐는데, 다른 세 멤버는 6번 사진을 선택했다. 같은 작가의 같은 사진이라도 포인트가 달랐기 때문에, 취향의 미묘한 차이를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