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은 사진을 보며 쓰는 글, 김경태 <표면으로 낙하하기>

 

사진을 찍은 사진을 보며 쓰는 글

김경태 <표면으로 낙하하기>, 휘슬, 2019. 5. 17 - 6.22

 

글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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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가 복사기를 거치면서 복사(Photocopy)될 때, 그 위에 손으로 쓴 글씨나 밑줄 또는 펜의 압력으로 생긴 자국은 평면 이미지상에서는 거의 비슷하게 복제될 수 있지만, 3차원의 맥락에서 따져보면 원본과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잉크가 종이에 완전히 스며들거나 펜을 긋는 압력으로 인해 종이에 생긴 미세한 굴곡과 같은 흔적들은 분말 형태의 복사기 토너로는 온전히 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사진(Photography)도 피사체의 표면적인 모습은 재현할 수 있을지언정, 대상 자체를 그대로 재현하거나 질감까지 복제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이를 렌즈 앞에 놓인 피사체를 재현한다거나 복제한다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이는 오히려 ‘재현하는 것으로 합의 내지는 간주'된 것에 가깝다. 이렇게 카메라는 3차원의 공간이 촬상면에 평면으로 변환/압축된 이미지를 캡처할 뿐이지만, 인간의 눈은 종종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것을 마치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보듯 평면이 아닌 3차원의 형태로 인식한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카메라 렌즈가 보는 세상과 우리가 두 개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사이에는 오차가 존재하지만, 광학기술은 카메라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연구를 거듭해왔고, 사진 이미지에 익숙해진 우리의 두뇌는 오차를 교정해 이미지를 인식한다. 덕분에 우리의 일상에서 이러한 오차는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지점에서 우리는 사진을 통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실제 사물이 아니라 그것을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이것을 ‘사진 자체’로 인식하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눈과 카메라의 렌즈를 동기화시키고, 사진 속 피사체를 해당 사물의 등가물로 대하는 착시에 빠진다. 

 

김경태<표면으로 낙하하기>(휘슬) 전시전경

 

김경태가 자신의 첫 개인전 <표면으로 낙하하기>(휘슬, 2019) 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카메라와 인간의 눈 사이에 존재하는 오차와 사진이 일으키는 착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업의 출발점이자 기준점으로 작용하는 가로/세로/높이 1cm의 스케일 큐브는 작가의 이전 작업에서 육각너트나 작은 돌멩이가 그랬던 것처럼 실제 사물과 사진 속 사물 사이 스케일의 격차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이번 작업에서는 정육면체라는 형태가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출품작들은 모두 전시장 한켠에 놓인 스케일 큐브를 촬영한 사진이지만 사진 속에서 큐브가 표현되는 모습은 모두 다르다. 포커스 스태킹(Focus Stacking) 기법을 통해 이어붙여진 사진들은 각기 다른 시각적 기준(투영법,projection)을 따라 평면 이미지로 구현되면서 눈으로 실제 사물을 보는 것과, 이를 사진으로 바라보는 것 사이의 격차를 강조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눈은 실제 스케일 큐브와 작품 속 스케일 큐브를 ‘같은 사물’로 인식하지만, 사진에서는 다르게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전시’라는 보여주기 방식을 거쳐 더욱 강조된다. 엄밀히 따져보면 전시장에서 작품들을 볼 때 각자의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는 완전히 동일할 수 없기 때문에 작가가 극복하려는 광학 원근법은 전시장에서 더욱 무너지기 쉬운 상태가 된다. 사진 이미지 자체는 온전한 평면이지만, 이것을 인화지에 프린트하고 액자에 둘러놓은 ‘작품’ 자체는 완전한 평면이라 볼 수 없기에 작품 속 이미지를 인식하는 관객은 각자의 키와 작품 앞에 선 위치, 시선의 방향, 각도에 따라 자신이 바라보는 작품 또는 작품 속 스케일 큐브에는 조금씩 왜곡이 덧대진다. 하지만 뇌에서는 이를 온전한 평면의 이미지로 교정하기에 전시장에 선 관객은 이것이 스케일 큐브를 촬영한 ‘사진’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카메라의 원근법에서 벗어난 투영법으로 설계된 작품들은 얼핏 왜곡된 이미지로 보이지만, 이는 정확하게는 왜곡이 아니라 광학 원근법이 아닌 다른 기준점으로 만들어진 (낯선)이미지라 보는 편이  타당하다. 그리고 이는 작품 속 사물-스케일 큐브-보다는 이를 촬영한 사진 자체의 존재를 드러나게 만든다. 광학 원근법을 통해 체화된 ‘창문으로서의 사진’은 산산히 부서지고, 앞이 막혀있는 평면 이미지로서의 사진만 남아 비로소 자신이 어떤 사물의 재현물이나 복제물이 아닌, ‘사진’임을 말한다. 

 

이렇게 광학적 원근법을 교란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작가의 시도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다시 촬영한 전경 사진을 통해 더욱 명확하게 나타난다. 휘슬 홈페이지에 게시된 전시 전경 사진들을 보면, 이들은 일반적인 전시 전경 사진과는 달리, 작품 정면에서 수직 수평에 맞춰 찍힌 사진이 거의 없고, 개별 작품 사진 역시 측면에서 촬영해 관객이 전시장에서 인식한 작품(그리고 스케일 큐브)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작품들이 전시장 전경을 찍는 카메라를 통해 다시 광학적 원근법이 적용된 뒤틀린 모습으로 보여지면서, 전시장의 작품들이 각각 어떤 이미지였는지 명확하게 떠올릴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작품을 또는 <표면으로 낙하하기>의 전시 전경 사진을 바라보는 관객의 두뇌는 자신이 인식한 오차와 왜곡을 작품 자체-평면-의 모습으로 되돌려 인식하는가 아니면 정육면체의 스케일 큐브의 모습으로 교정시켜 인식하게 되는가? 

 

이미지 제공 : 휘슬


① 촬상면 : 렌즈를 통해 만들어진 외부의 상이 카메라에서 맺히는 부분.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센서가, 필름 카메라에서는 필름이 촬상면이 된다.

② 포커스 스태킹 : 피사체의 초점이 맞는 부분을 미세하게 이동하면서 촬영하고 이를 통해 초점이 맞은 부분만 이어붙이는 기법. 이를 통해 피사체의 모든 부분에 초점이 맞은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고, 부분촬영 후 합치는 방식으로 해상도를 높힐 수도 있다.

 

전시장에 놓여있던 스케일 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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