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평한 세계 돌아다니기, 김희천 <홈>




평평한 세계 돌아다니기

김희천, <홈>, 두산갤러리, 2017.11.29. - 12.23.


글 콘노 유키(Yuki Konno)



 탐정 애니메이션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탐정이 된 느낌이 들고 마음이 설렌다. 증거를 찾은 뒤, 장소를 옮기면서 그 인물을 뒤에서 쫓아가는 장면에선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렇지만 끝끝내 추적대상을 잡지 못하고 결말이 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때 탐정(의 시선을 공유하는 관람자)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채 이야기 속에 갇혀버린다. 이번 두산갤러리에서 소개된 김희천의 영상작업 '홈'도 마찬가지다. 가상의 애니메이션 '호-무(ホーム)'에 나오는 소녀탐정 에리카, 성지순례를 하는 화자, 그리고 관람자는 탐정의 시선으로 인물을 추적한다. 이들 모두 중간에 헤매고 길을 잃어버리는데 이때 가장 혼란스러운 인물이 바로 관객이다. 관객은 ‘할아버지를 찾는 에리카’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역추적하는 팬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상과 현실 역시 뒤섞여 있다. 애니메이션 <호-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니메이션 장면이 완벽한 허구/가상이라 말할 수 없다. 그것들은 서울의 여러 지역을 똑같이 묘사하여, 기법적으로 보면 현실에 충실하지만 극도로 미화되어 나타난다. 


 이처럼 '홈'은 시간축과 가상과 현실이 뒤섞여 여러 레이어로 분화된다. 이는 화자가 의문의 집을 설명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때 관람객은 시공간적으로 다른 차원을 시각적인 차이로 인식할 수 있다. 한 화면에 실제 삼성동에서 촬영된 이미지, 애니메이션의 스틸컷, 그리고 방송 프로그램의 컷이 동시에 등장하는데, 어느 것이 허구 혹은 실제라고 구별/단정하기 힘들다. 인물과 스토리를 추적하는 어려움에 덧붙여, 시공간 축과 가상/현실을 구분하는 어려움은 관객을 작품 속에서 헤매게 만든다. 이때 관람자가 겪는 혼란은 현실과 가상의 ‘대립’이 아니라, 현실과 가상의 ‘균형’, 즉 두 개념이 위계 없이 수평으로 놓인 '혼돈(chaos)' 상태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여기서 관람자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일에 힘들 수 있어도, (오히려) 현실과 가상이 워낙 혼란스럽게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 장면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별할 필요가 없어진다. 화자가 하는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현실세계랑 너무 가깝다.” 수평선상에서 서로 간의 간극이 점점 가까워지고 어떤 것이 가상 혹은 현실이라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때 프레임 안의 내용과 표현은 원본에 뒤쳐진 것이 아니라 단지 시각적인 차이로만 나타난다.


김희천, '홈', 스틸컷



 이와 같이 시각적으로 전달된 혼돈은 작품 내부뿐만 아니라 관람자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경험된다. 거의 결말 부분에 다시 한 번 나오는 의문의 집 내부 풍경은 실제로 촬영된 장면인지 아니면 디지털 이미지인지, 그리고 화자가 집 안으로 들어간 묘사인지, ‘잠이 드는 설정’을 통해서 에리카와 똑같이 워프된 것인지 쉽게 구별할 수 없다. 여기서 꿈인지 아닌지가 상당히 모호해지는데, 로맨틱 발레—예를 들어 ‘지젤’[각주:1]—에서 주인공이 ‘(말 그대로) 꿈꾼’ 시대를 지나, 오늘날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더불어 가상과 실제의 대립이 마모되었다. 거의 정신이 뚜렷한 상황에서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지며, 물리적 공간과 비물리적 공간의 차이가 와해되었다. 이 수평적 관계는 내가 전시장에서 해외에 있는 친구와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게 하고, 내가 굳이 작품을 보러 갈 필요 없이 정보의 바다/혼돈 속에서 이미지를 찾을 수 있게 한다. 영상에 묘사된 에리카와 화자의 모습은 화면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 있는 관람객에게도 해당된다. 에리카의 “점, 위치로만 남았다"는 대사는—폴 비릴리오(Paul Virilio)가 언급하듯이—실제의 공간감이 속도에 의해 사라지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접속되는 순간(점)을 통해서 현전 가능한 현대인의 모습을 비춘다. 작품 <홈>은 단어의 이미지와 달리 머무르는 장소가 아니라,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는 하나의 지하철 승강장에 더 가깝다. 전철 승강장을 일본사람들이 ‘호-무’라 부르는 것처럼, 관객들은 전시장에서 빠져나오면서 평평해진 시공간을 돌아다닌다. 그 모습은 어쩌면 야영지에서 깃발처럼 텐트를 흔들어도 더 이상 헬기의 구조를 받을 수 없는, 갇혀버린 탐정의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른다.








사진 제공 : 두산갤러리






  1. '지젤'을 보면 죽은 여인과 헤어진 남자가 둘이 만난다.이 장면은 지상(실제)과 천상(가상)이 서로 섞여 있다.이처럼 로맨틱 발레는 스토리와 테크놀로지 양자를 통해 가상과 현실의 공존을 보여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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