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환경에서 살아가기, 안광휘 <the pathetic rhymes>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가기

안광휘, <the pathetic rhymes>, 인스턴트 루프, 2017.08.01. - 08.11.


글   김이현

 


 안광휘의 첫 개인전이 열렸던 인스턴트 루프는 안국역 근처 좁은 골목에 자리한 작은 전시 공간이다. 여타의 전시장들보다 다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위치 크기 공간에서 작가는 자신의 무기력한(pathetic) 방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듯했다


 먼저 전시장 벽면에는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이미지(태양계, 설산 자연 이미지) 위에 디지털 컷팅으로 잘라낸 컷팅 매트를 얹은 작업들이 위치했다. 원래 컷팅매트란 커터칼로 인한상 훼손을 방지하고칼자국을 스스로 회복하는 셀프힐링 강조하는 상품이다. 하지만 디지 레이저 컷팅이라는 새로 덕분에 매트 정교하게 잘렸다. 검정을음을 남기며 쉽게 잘린 컷팅매트는 (마찬가지로 프린터 통해 쉽게) 인쇄된 이미지 위로 겹쳐진 전시됐고 결과 아래에 깔렸던 이미지 (그림자를 제외) 밝은분이 드러났다. 작업에서 컷팅매트는 더 이 본래의능을 하지 않고, 인쇄된 이미지 역시 컷팅매트로 덮여 온전하 못하다. 그러나 이미지 액자 안에서 중첩돼 디지털 현실을 오가낭만주의적 공간의 풍경”[각주:1] 나타낸다


                                                                                 컷팅매트-1702, 2017, 혼합매체, 45x62cm, 1/10ed


 한편 전시장 공간에 자리한 간이침대에는 아이패드와 헤드폰이 놓여있다. 아이패드에는 6개의 트랙 리스트가 저장돼 감상자의 마음대로 트랙의 음악과 영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 트랙마다 헤드폰에서는 개인적이며 우울한 내용의 랩이 흘러나왔고, 아이패드에서는 가사에 맞춘 아스키 아트(ASCII Art)[각주:2]가 재생됐다. 우선 인스턴트 루프 홈페이지 내 글에서 작가는 고교 시절 음악을 만들었던 과정을 회상한다. 작가는 과거에 컴퓨터와 mp3 플레이어를 사용해 음악을 만들거나 공유하는 과정을 돌아보는데,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오늘의 디지털 환경에서 다양한 기술은 보급되었고, 과정은 축약되었으며, 공유 기능 서비스는 발달했다. 그리고 음악과 마찬가지로 이미지와 영상의 제작 및 공유도 더욱 쉬워졌다. 그러나 작가는 (거의 사장되어가는) 아스키 아트를 이용해 영상을 제작한다. 아스키 아트의 주재료인 문자는 "용량으로만 따지면 가장 가벼운 의사소통 수단"이다. 또한, 문자는 다른 매체들(이모티콘, 그림, 사진, 동영상 등)만큼 새로운 기술은 아니지만, 여전히 의사소통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안광휘의 영상에서 문자는 두 가지로 작용한다. 우선 화면의 하단에서 문자는 기존의 기능대로 가사 역할을 한다. 랩의 라임(rhyme)에 맞춰 가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단을 제외한 화면을 채우는 문자들은 그런 원래의 기능에서 벗어난다. 문자들은 기존의 의미나 역할로부터 독립된 존재가 되고, 배열에 따라 사물 혹은 사람을 표현하는 아스키 아트의 재료가 된다. 그 결과, 화면에서 문자는 다른 매체들을 흉내 내며 그림, 사진, 동영상 같은 효과를 낸다. 



 작가는 전시의 제목과 동일한 제목의 트랙을 설명하면서 “매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한계에 좌절하는 것과 그로부터 도망치려 해도 벗어나기 힘든 상황들, 그리고 그것에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내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 설명은 전시의 컷팅매트와 문자에도 적용된다. 액자 속 컷팅매트는 이미지의 밝은 부분만 드러내도록 컷팅됐고, 영상은 검정 바탕에 하얀 문자로 제작돼 무기력한 분위기를 만든다. 작업 전반은 이런 센티멘탈함을 자아내지만, 컷팅매트와 문자는 담담하게 반응한다. 특히 이들은 기존의 기능에서 벗어나 다른 매체와 병합되거나 다른 매체를 모방하며 변화를 모색한다. 다시 말해 컷팅매트음악, 문자 그리고 작가는 “현실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자신”을 나타내고 있다.



 

사진 제공 : 인스턴트 루프



  1. https://www.instantroof.net/single-post/2017/07/25/show안광휘the-pathetic-rhymes-20170801-0811 (인스턴트 루프 홈페이지 2017. 10. 20. 접속) [본문으로]
  2. 아스키 아트(ASCII Art)란 디지털의 문자, 기호를 사용한 그림을 의미하며 주로 이모티콘으로 사용되지만 여러 줄을 이용해 더 정교한 표현도 가능하다. 개인이 문자를 사용하며 직접 아스키 아트를 제작할 수도 있지만, 변환 프로그램을 통해 사진이나 이미지를 쉽게 변환할 수도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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