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으로 조형하기,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

시점으로 조형하기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 아트선재센터, 2018.3.3-2018.4.8


글 곽현지



아트선재센터의 공간을 떠올려 보면 사분원이라는 형태 그리고 몇 개의 기둥이라는 두 가지 특징이 떠오른다. 이것들은 예상가능한 것인 동시에 어느 정도 까다로운 지점으로 작용한다. 공간의 물리적인 성격이 어느 정도 담보되어 있는 상태에서 김동희, 김민애, 오종, 이수성, 최고은 5명의 작가들은 이 공간을 질료로 혹은 조건으로 삼는 간결한 외양의 작업을 펼쳐낸다.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 2층 전시 전경


이수성의 ‘무제(Quarter Pipe)’는 이러한 환경에서 관람객으로 하여금 외부적 상상을 유도해낸다는 점에서 주시할 만하다. 전시 공간의 가운데에 있고, 작품이 차지하는 부피와 정형의 형태로 인하여 가장 조각의 관념에 근접해보이는 ‘무제’는 비교적 단일한 개체로 느껴지기에 나머지 공간에서 작품의 참조점을 찾게 만든다. 다른 작품과 맺는 관계가 가장 느슨한 것처럼 보인 채, 관람자는 이 조각의 모서리와 곡면 주위를 거닐며 작품의 실체에 대해 머릿속에 물음표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작품이 참조하는 레퍼런스야말로 직육면체라는 균질한 공간을 상상한 후 아트선재센터의 사분원을 제하고 남은 모양이다. 작품은 제목처럼 쿼터 파이프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트선재센터의 사분원 구조를 뒤집은 모양이다. 즉 이수성의 조각과 아트선재센터의 건물을 합치면 온전한 직육면체가 되는 것이다. 작품이 위치한 공간의 조건을 탐구하는 이수성의 작업은 작품이 맺는 공간과의 관계를 ‘전시장 내에서’ 찾으려는 관객의 시도를 무용하게 만드는 동시에 작품을 향한 상상력을 공간 바깥까지 확장시킨다.


이수성의 작품이 어디서든 잘 보인다면 김민애의 ‘소실선’은 시선에 바로 닿지 않는다. 작품의 물리적 높이는 아주 낮지만 전시공간의 관습을 내면화하고 있는 관람자는 으레 그것을 넘지 않고 돌아서서 가게 된다. ‘소실선’은 아주 얇은 선처럼, 대놓고 가시성의 영역에 쉽사리 걸쳐있지 않으면서 전시장 기둥의 존재를 가린다. 이것은 3층의 같은 위치에 있는 김동희의 ‘볼륨: 타입 1,2’와 대비된다. 김민애가 연속된 기둥 앞에 선을 그음으로써 기둥을 더 이상 다가갈 여지가 없는 개체로 격하시켰다면 김동희는 되레 기둥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인지하게 만들었다.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 3층 전시전경


‘볼륨: 타입 1,2’의 거울은 멀리서 봤을 때 거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거울에 비친 흐릿한 선의 정체가 아트선재센터의 기둥과 천장의 조명이었음을 깨닫고, 더 다가가면 관람자 자신이 보이고 3층의 다른 작품이 보인다. 측면에서 보면 알루미늄 프레임의 연속만이 눈에 띈다. 즉 거울은 각도에 따라 스스로를 지시하기도 하고 거울이 되는 조건들을 비추기도 하고 현전하는 관객을 비추기도 한다. 이 공간에서 열렸던 대부분의 미술전시는 전시장의 기둥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대상으로 남겨두었다. 그러나 ‘볼륨: 타입 1,2’의 경우 관람자들이 거울을 끊임없이 보기 위해서는 오히려 기둥에 의해 시선이 끊기게 되면서 기둥의 존재감이 강해진다.

거울이 인지되는 방식은 관람자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다른데, 그 이유는 거울 바로 위에서 떨어지는 자연광, 전반적으로 밝지 않은 조도, 각각의 광원이 다른 광원으로부터 반사되어 빛나는 중첩된 광원과 같은 빛에 대한 감각 때문일 것이다. 전구색 조명과 자연광이 이루어내는 조도 차이가 ‘볼륨: 타입 1,2’가 이 작품이 위치에 따라 어떻게 인식되는지 영향을 미친다.




빛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어가본다면, 2층과 3층을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조명일 것이다. 3층에 이르러서야 2층이 굉장히 하얀 공간이었음을 깨닫고 조명의 배치와 색상을 분류하기 시작한다. 전구색 조명이 고르게 사용된 2층과 달리 3층은 전구색과 주광색의 조명이 혼합되어 사용되었으며 자연광의 개입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층의 대부분의 공간이 전구색 조명으로 쓰인 것에 반하여 최고은의 ‘화이트 홈 월’에는 전구색과 주광색 조명이 혼합되어 쓰였다.


‘화이트 홈 월’은 사용자의 흔적이 깃든 에어컨의 부품의 일부들을 연결한 작품이며 <두 번째>(원앤제이 +1)에서 선보인 작품과 달리 천장의 한 가운데에 매달림으로써 앞뒤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이것은 조명을 가로지르는 동시에 공간을 분할하고 단일 시점의 시선을 차단한다. 즉 ‘화이트 홈 월’이 다른 작품들에 대한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그것들을 한 눈에 관망하는 것을 방해하며,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야 하는 등 구체적인 감각의 사용을 요한다.




왼쪽: 최고은, '화이트 홈 월', 스탠딩 에어컨디셔너, 1000x185x7cm, 2018

오른쪽: 오종, '방 드로잉(모노크롬) #4', 아크릴판, 쇠막대, 실, 체인, 추, 낚시줄, 연필선, 페인트, 2018



‘화이트 홈 월’이 분할하고 있는 벽 쪽 공간은 주광색 조명만이 비출 뿐 아무 것도 없다. 이 여백을 곱씹으며 다시 계단을 내려와보자. 2층의 이 위치에는 오종의 보이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오브제로 채워져있다. 관람자는 ‘방 드로잉(모노크롬) #4’을 둘러싸고 있는 프레임들, 즉 계단 모양의 천장 마감과 천장 조명과 동일한 바닥 조명들을 먼저 보게 된다. 천장에 매달린 원통형 추, 아크릴 판, 실, 체인 등 기하학적 형태의 오브제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이후의 일이다.

‘방 드로잉(모노크롬) #4’은 천장에 매달려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전시공간의 벽과도 밀착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작품은 추상적인 감수성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 특히 벽의 내력에 주목하게 만든다. 화이트큐브의 벽은 마냥 하얗기만 한 것이 아니기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기는 미묘한 얼룩과 자연적으로 간 금, 작품의 지지대를 붙였다 뗀 흔적이 작가가 그려넣은 선과 묘하게 혼동된다. 오종은 공간에 기민하게 반응하여 공간에 대한 드로잉을 수행해 나갔고, 관람자는 역시나 오래 머무는 만큼 공간과 작품의 연쇄를 경험할 수 있다.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 3층 전시전경


김동희의 ‘볼륨: 타입 1,2’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2층 전시장 바깥의 풍경과 대비되어 3층의 평상은 내부의 풍경을 끌여들여 전시장을 관조하게 만든다. 누구의 작품도 아닌 평상에서 작품들을 둘러본다. 작품들은 서로 경합하거나 조화로울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는다. 동일한 작품이 2층과 3층 공간에 반복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하나의 이름을 가진 작품이 두 층에서 분화하기도 한다. 혹은 다른 층의 같은 위치에 대응하기도 한다. 이 대응은 작품 간의 대비로 이어지기도 하고 연결로 이어지기도 한다. 작품이 점유하는 물리적인 크기, 위치, 의도하고 있는 공간 조건과의 연결고리가 각각 다르지만 작품들은 서로 관계성을 가지는 셈이다. 머릿속에서 이를 지도로 잇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가 전시되는 아트선재센터는 물화되고 추상화된 공간이 아닌 몸으로 느껴야하는 촉지적 공간이기에, 관객들은 선험적 사고 이전에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빛과 형상을 관찰하고 공간을 넘어선 상상력을 펼쳐낸다.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는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을 배치하는 작곡 기술인 대위법에서 유래했다. 두 개의 선율을 가진 음악이 끊이지 않고 재생되는 것처럼, 작품은 관객의 시점에 따라 재구성되고 재인식된다. 각자의 높이를 갖는 소릿값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최종적으로 다른 음악이 될 것이고,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 또한 어디에 작품을 맺고 풀지, 채우고 비워낼지에 따라 전시가 자아내는 긴장감의 결이 달라질 것이다. 시점은 작품을 다양하게 교차시키고 공간은 음악처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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