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가 예술~사진, 압축과 팽창 <허니 앤 팁>




여기까지가 예술~사진

압축과 팽창 <허니 앤 팁> 아카이브 봄, 2017.9.01 - 9.22



글 이상엽




키워드: 허니(Honey) 

 ‘허니’ 이 단어를 한번 떠올려 보자. ‘허니’를 둘러싼 어떤 감각과 정보가 머릿속과 눈앞에 펼쳐지는가? 노랑 계열의 색이 어른거리는가. 아니면 끈적끈적한 점성과 그 끈적한 점성을 가진 물질이 흘러내리는 장면이 떠오르는가. 꿀벌의 움직임과 층층이 육각형을 이루는 벌집 모양이 아른거리다가 달콤한 맛이 생각나서 침을 꿀꺽 삼켜 버리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콧소리 가득 “허~니”를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 목소리와 이어지는 어떤 대중가요의 도입부가 상상되는가. 다른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는 이보다 더 다양한 ‘허니’가 펼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허니’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가능성 중 단 하나만을 선택한 다음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가져오기로 했을 때 그건 어떤 이미지가 될까?    


 전시 <허니 앤 팁>은 ‘허니(Honey)’라는 단어를 포함해 총 200개의 키워드를 이미지로 변환하고, 가시화된 사진 이미지 모음을 토대로 전시 공간 안팎을 구성한다. 200개의 키워드는 사진 듀오 ‘압축과 팽창’의 구성원 안초롱과 김주원이 각자 100개씩 총 200개를 선정한 것이고, 전시 공간을 이루는 이미지들은 스톡이미지 웹사이트에서 앞선 키워드를 입력-선택-구매-출력-활용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전시된다. 

 앞선 과정을 거쳐 전시된 200개의 키워드를 대변하는 각각의 이미지는 전형성을 담보한 고화질 이미지라는 신분을 가진다. 이 이미지들은 ‘셔터스톡(Shutterstock)’이란 곳에서 나고 자랐다. 이곳은 가장 잘 찍은, 가장 전형적인 이미지들의 아카이브로 불리는데, 총 157,498,592 개의 로열티 프리 이미지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주만 해도 새로운 이미지 1,168,811 개가 추가되었다(2017.10.13. 검색 기준). 수많은 디지털 이미지의 서식지인 셔터스톡은 2003년 창립자이자 CEO인 존 오린저(Jon Oringer)가 가진 수천 장의 디지털 사진을 기반으로 터를 꾸리고 현재에 이르러 1억 개가 넘는 이미지를 보유한 ‘요금제 가입형 글로벌 이미지 마켓 플레이스’로 자리잡았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이미지가 저장되고 판매되는 장소가 바로 앞선 200개 키워드 이미지 무리의 본토인 셈이다.  



어떤 디지털 이미지의 팔자(八字)

 방대한 양의 디지털 이미지와 이 이미지들을 포괄하는 방대한 크기의 저장 공간이 지니는 가능성은 스톡 이미지 사이트 ‘셔터스톡’과 같은 유형의 공개된 장에서 펼쳐지기도 하지만, 어떤 미공개의 깜깜한 공간에서 컴컴한 이미지가 되어 한없이 오그라져 있기도 한다. 가령 압축과 팽창의 구성원 김주원은 2015년의 작업 노트에서 ‘실패한 다큐멘터리’에 대해 언급한다. 김주원이 찍은 매일의 스냅사진을 축적한 아카이브들은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미덕을 비켜 나간 별 다른 체계없이 기록된 일상의 조각난 파편 모음으로, 그는 이 이미지 모음을 ‘실패의 다큐멘터리’라 명명한다. 이 이미지들은 어느 날 호출되고 호명될 수 있지만 아직 호출되거나 호명된 바 없는 비공개의 장에서 오므라져 있는 발화되지 않은 이미지들이다. ‘실패한 다큐멘터리’에 속하는 이미지들은 2015년 김주원의 개인전 <밝은 세계>(갤러리 175, 2015)에서 약 3000장 중 1500장만 부분 추출되어 저렴한 인쇄방식으로 출력되어 공간에 도배되었는데, 이 이미지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붙었던 벽 위에서 이내 뜯겨 버려졌다. 그렇게 김주원이 가진 이미지들은 밝은 세계와 반대되는 어둠과 실패의 세계로 향한다. 불행하게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횟수와 사진을 담을 수 있는 저장 공간이 무한에 가까워진다는 건 어쩌면 점점 더 많은 이미지가 저장 공간 안에만 머물게 될 수도 있음을 내포한다. 그것은 어떤 디지털 이미지들을 향해 점쳐진 불운한 팔자일지도 모른다.       



어제의 프로는 오늘의 아마추어? 오늘의 아마추어는 내일의 프로?

 앞선 200개의 키워드로 구성된 스톡 이미지가 <허니 앤 팁>을 이루는 ‘파트1. 허니 HONEY’의 전시 방법이라면, ‘파트2. 팁 TIP’은 안초롱과 김주원이 6개월간 사진술 일반에 관해 개별 트레이닝한 결과들을 선보이는 방법을 취한다. 압축과 팽창은 연습/수행/실천/실행 모두를 포함하는 단어로 ‘프랙티스(practice)’의 과정을 결과물로 전시 공간에 배치한다. ‘파트2. 팁 TIP’은 외주로 포토샵을 이용해 만든 샘플 사진, 공사현장에서 주워온 흑백 사진, 야구장에서 시속 100km로 발사되는 야구공을 찍은 1000장의 사진, 100일 동안 매일의 피사체를 찍은 100장의 사진, 정물 구성 연습이라는 이름으로 벌인 대결 사진, 결과물의 불확실성 극복을 위해 촬영한 현상 이전의 코닥 카메라, 코닥 카메라 필름 테스트 컷이 담긴 썸네일 포스터 등의 세부 항목으로 구성된다. 

 위 트레이닝의 결과물 중 하나는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이름 붙여졌다. '2017년 4월 12일부터 "안"이 '하나의 피사체에 천착하여' 대상 본질을 담기 위해 100일동안 촬영한 100장의 극락조 사진 중 58번째 사진'이라는 긴 제목으로 말이다. 극락조라는 하나의 피사체를 담기 위해 찍은 100장의 사진은 100장 중 대상의 본질을 가장 잘 포착한 사진 하나를 고르고 나머지 99장을 삭제하거나 괄호 안으로 숨기는 방식이 아닌, 전시장 한쪽 벽면에 사진이 찍힌 시간 순으로 100장의 사진 모두를 쪼르륵 배열하는 방식을 취한다. 날아가는 야구공을 찍은 1000장의 트레이닝 결과물 사진 또한 앞선 배열과 같은 방식을 따른다. 또한 압축과 팽창의 트레이닝 중 정물 구성 연습이라는 이름으로 제약된 환경에서 두 작가가 서로의 물건을 바꿔 촬영하는 대결 구도 사진 실험은 사진학과의 입시 시험의 과정을 차용하는데, 이 방식은 짐짓 프로 사진가가 되기 위한 순서 혹은 과정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미 그 단계를 훈련하고, 각자 몇 번의 개인전을 거친 압축과 팽창에게 앞선 훈련의 재수행은 어떤 의미이며, 이들의 시도를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 어디쯤 위치한다고 말하면 적당할까.

 <허니 앤 팁>의 ‘파트2. 팁 TIP’에서 연습과 실전, 과정과 결과는 나누어 구분되지 않고 연습 자체가 실전이 되고 과정 자체가 결과가 되는 방식을 이룬다. 이런 방식을 따른다면 어제의 프로는 다시 사진술 연마를 꾀하며 오늘의 아마추어가 되기도 하고, 오늘의 아마추어가 내일의 프로가 되기도 하는 아마추어와 프로 정체성 사이의 순환을 이루는 훈련이 되는걸까? 그게 아니라면 아마추어와 프로는 언제든 취하거나 버릴 수 있는 무의미한 지위인 걸까? 



여기까지가 예술 사진

 두 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사진 전시는 예술 사진 개념의 새로운 포획과, 사진 전시로의 가능성을 어디까지 확장시킬 수 있을지 묻게 한다. 이미지 판매 웹사이트에서 구매한 사진, 공사현장에서 우연히 줍게 된 사진, 작업 목적 이외 외주를 받아 포토샵으로 제작한 사진, 특정 조건을 두고 대결 구도로 찍은 사진, 트레이닝을 목적으로 찍은 100장의 또 1000장의 사진 등 이 모든 종류의 사진은 어느 것이 더 낫거나 못할 것 없이 전시를 목적으로 한 사진 작업으로 나란히 놓인다. 오늘날 작가가 한 피사체를 놓고 100일의 수행을 거쳐 찍은 사진과 인터넷에서 키워드 검색으로 구매한 저작자 불명의 디지털 사진 사이에 예술 사진으로서 구별된 위상이 존재하는가? 지금에 와서 또 한 번 예술 사진을 이루는 방법과 예술 사진을 결정짓는 조건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규정할 수 있을까? <허니 앤 팁>을 통해 “자,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예술~사진!”에서 ‘여기’를 지우거나, 넓힐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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